1901년 1월31일 미국의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오하이오주 캐디즈에서 태어났다.1960년 몰(歿).초창기의 영화 배우들이흔히 그랬듯, 게이블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한 뒤에야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게이블의 아버지는 뜨내기유전(油田) 노동자였고, 게이블 역시 그 직업을 이어받아 유전 인부로 일했다. 그는 이밖에도 벌채 인부, 도로공사 인부, 외무 사원 등 잡다한직업을 거쳐 유랑극단의 무급배우가 되었다.
유랑극단을 전전하다가 그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해서 갱 역을 맡은 것은 24세때였고, 대사 있는 역을처음 맡은 것은 그보다 6년 뒤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에서 신문기자 피터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탄 게이블은 그 뒤 ‘바운티호의 반란’(1935) ‘지구를 달리는 사나이’(1938) ‘바람과함께 사라지다’(1939) 등의 대작에 잇따라 출연하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인 1960년에도 ‘거친 말(馬)과여자’에 출연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석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게이블(레트 버틀러 역)과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 역)가 입을 맞추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인데,실상 게이블은 주윗사람들이 숨쉬기도 힘들어할 만큼 입냄새가 심해서 비비안 리가 여러 차례의 엔지를 내며 말도 못할 고생을 치렀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많은 여자가 따랐다. 게이블은 다섯 번 결혼했고, 다섯번째 아내인 십년 연하의 배우 케이 스프레클스에게서 유일한 아들을 얻었다.그가 죽고나서 5개월 뒤였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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