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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기행 / '남이섬' - 포플러 길 두남녀 웃음소리 들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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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기행 / '남이섬' - 포플러 길 두남녀 웃음소리 들리는듯…

입력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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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여행은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길이다.지난 여행의 추억은 아름답게 편집돼 가슴에 남는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정은 더욱 그렇다. 행복한 색깔이 칠해지고 군더더기는 희미해진다. 거꾸로, 드라마는 여행을 유혹한다.

드라마와 같은 추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 인기 여행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경이 된 남이섬.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스한 사랑노래가 흐르고 있다.

배는 차가운 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맹추위가 계속됐다면 꽁꽁 얼었을 호수. 그러나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살얼음조차 얼지 않았다.

방학을 즐기는 여고생들, 그리고 왠지 슬픈 표정을 짓는 두 연인. 100여 명은 족히 태울 수 있는 배는 달랑 10명의 승객만 싣고 출발했다.

육지에서 섬까지의 거리는 약 400m. 5분이면 충분하다.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안내도에는 ‘캠프촌’이라 쓰여있다.

축구장의 10배는 됨직한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여름에는 오색의 텐트가 촘촘히 들어서는 곳. 지금은 단 한 개의 텐트도 없다.

누렇게 시든 잔디만 겨울 햇살을 받고 있다. 툭 터진 공간은 마구 달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 쌍의 연인이 넓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한다.

뛰다가 넘어지고,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다시 일어나 뛴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잔디밭을 메운다.

캠프촌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어진다. 바닥의 잔디만 응시하던 시선이 자꾸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을 찌를 듯한 포플러나무가 2열 종대로 도열해 있다. 모든 잎을 털어낸 벌거벗음 그 자체이다. 그 사이로 길게 길이 나 있다.

‘겨울연가’에서 봤던 모습이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사람은 교복차림의 남학생(배용준)이고 뒤에 탄 여학생(최지우)은 두 팔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지는 않았지만 남녀가 길을 간다. 거대한 나무의 둥치가 신기한지 남자는 엷은 미소를, 여자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길을 가로지르는 것이 있다. 사슴이다. 사슴은 길 가운데에서 잠시 섰다. 지나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간다.

포플러길이 끝나는 곳에서 색다른 길을 만난다. 철길이다. 섬을 가로로 횡단하는 미니열차가 다니는 길이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운행하지만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가느다란 선로가 나란히 놓여있다.

한쌍이 선로 위를 걷는다. 선로의 폭은 팔짱을 끼고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남자는 그런대로 걷는데 여자는 자꾸 선로를 벗어난다.

높은 신발굽 때문에 그런가 보다.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다. 작은 봉우리였다. 1940년대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주변이 물에 잠기고 봉우리는 섬이 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속해있고 길은 경기 가평군으로 통한다.

둘레가 약 6㎞로 작은 섬이지만 1960년대부터 나들이터로 이름을 떨쳤다. 남이섬의 원래 주인은 섬 이름이기도 한 조선의 남이(南怡ㆍ1441-1468)장군.

그가 유배를 당해 기거했던 곳이자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 반란을 평정한 남이 장군은 27세에 병조판서가 된 기린아였다.

왕가의 인척이란 이유로 유자광의 모함을 사 28세에 처형당한 안타까운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남이섬이 매스컴의 무대가 된 것은 ‘겨울연가’가 처음이 아니다.

수 많은 가수를 배출한 ‘강변가요제’의 무대였다. 최인호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겨울나그네’도 이 곳에서 촬영했다.

당시 대학교정을 자욱하게 물들이던 최루탄만큼이나 눈물을 자극했던 영화이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1970~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섬에서 밤새 술에 취해 울분에 찬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을 터이다.

너무 많이 알려져서일까. 섬은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소비문화가 판을 치는 위락관광지가 될 뻔했다.

지난해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인 문화의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많이 바뀌었다. 트로트 리듬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추는 관광객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연가’에 어울리는 향기로운 섬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방문객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너른 무대, 둘 만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주변 가볼만한 곳

남이섬으로 가는 길은 춘천 가는 길(경춘가도ㆍ46번 국도)이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게 경춘가도만큼 추억 어린 길이 또 있을까.

낭만을 실은 노래 ‘춘천가는 기차’(김현철 작사ㆍ작곡)도 떠오른다. 분명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워 짧은 시간에 대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가 많기 때문이다.

길 양쪽으로 ‘가든’과 ‘모텔’이 연이어져 있어 옛 정취가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여전히 위력이 있다.

강촌을 빼놓을 수 없다. 수십년 간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인기 1순위이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강촌의 진정한 맛을 알려면 마을을 두른 산에 올라야 한다.

검봉산, 삼악산 등은 한나절 등반에 어울리는 산들이다. 구곡폭포는 겨울에 압권이다.

강촌역에서 약 4㎞ 떨어져 있어 약 30여 분만 다리품을 팔면 만날 수 있다. 아홉굽이로 돌아떨어지는 폭포는 겨울에 아름다운 빙벽이 된다.

빙벽 등반가들이 하얀 얼음벽을 탄다.

남이섬까지갔다면 내친 김에 춘천까지 가보자. 춘천 여행의 으뜸은 역시 소양호와 청평사.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산에 오르는 독특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청평사는 오봉산 들머리에 오롯하게 자리잡은 고찰.

맑은 물냄새와 소나무 향기가 범벅이 되어 있다. 오봉산(779m)은 청평사를 굽어보는 바위산이다.

기암의 봉우리가 오밀조밀하게 늘어서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대표적이어서 오봉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 산행은 약 6시간 30분이 걸린다. 간단한 산행을 택한다면 청평사 앞에서 망부석, 홈통바위를 따라 오봉산에 오르면 된다.

3시간 30분 정도. 오봉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청평사 가는길의 구성폭포. 아홉가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고 한다.

높이 10m로 규모는 작지만 두 갈래로 나뉘어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물줄기가 기품이 있다.

■ 가는 길

가는 길은 간단하다. 46번 국도를 타고 구리시-남양주시-대성리를 거치면 쉽게 가평읍에 닿는다. 가평읍 5거리에서 우회전, 363번 지방도로를 잠시 달리면 왼쪽으로 남이섬 입구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약 2분 진행하면 선착장이다.

열차는 경춘선을 이용하면 된다. 성북역에서 하루 17차례 출발한다. 가평역에서 내린다. 가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이섬행 버스가 하루 10회 운행한다.

상봉터미널이나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타면 가평에서 내릴 수 있다. 선착장과 섬을 잇는 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시로운행한다.

입장료와 도선료 포함 5,000원이다. ㈜남이섬 (031)582-2181~5, 서울사무소 (02)753-1245~8

■쉴 곳

섬 안에 호텔(남이섬호텔)이 있다. 섬에서 숙박을 한다면 아침 안개 등 섬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평일은 4만 5,000원, 성수기와 주말은 5만 5,000원을 받는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예약이 필수.

섬 바깥에는 숙박시설이 무진장이다. 선착장 입구에 리버플파크모텔(031-582-2127), 파라다이스모텔(582-5670) 등이 있다.

민박을 이용하는 것도좋다. 콘도급 시설을 자랑한다. 콘도장민박(582-2739), 강변민박(582-5664), 경춘민박(582-5372), 남이민박(582-3422),평원민박(582-2651) 등이 선착장 인근에 있다.

■먹을 것

가평군의 특산물은 잣.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평군 산림조합(031-582-2207)에서 판매한다. 잣을 이용한 잣죽과 잣막걸리도 생산한다.

잣죽은 가평 농특산물 영농조합(582-8968),잣막걸리는 가평 명주술도가(582-2360)에서 생산ㆍ판매한다. 잣막걸리는 유사품이 많다.

‘가평 탁주 합동제조장’ 또는 ‘가평 명주 474’라는 표시가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입이 짧은 사람도 가평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필요 없다.

민물 매운탕에서부터 각종고기집까지 없는 것이 없다.

곧추 선 나목(裸木). 드라마 속 두 연인은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갔다. 우리를 나온 사슴 한 마리가 길을 가는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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