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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기행 / '태조 왕건'…1,400년 古刹은 허망한 권력싸움 비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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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기행 / '태조 왕건'…1,400년 古刹은 허망한 권력싸움 비웃어…

입력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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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전성시대이다. 사실(史實)을 드라마로 본다는 것은 흥미진진하다.사극의 역사적 현장 또는 촬영장도 여행지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의 재미에 아는 재미가 보태지기 때문이다.

인기 사극 ‘태조 왕건’(KBS1), ‘상도’(MBC), ‘명성황후’(KBS2)의 현장과 촬영장을 돌아봤다.

■전북 김제시 금산사(‘태조 왕건’)

고려의 개국 과정을 그린 드라마 ‘태조 왕건’. 드디어 삼국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후백제의 황제 견훤이 아들 신검의 반란에 밀려 절로 유폐됐다. 절 이름은 금산사. 허구가 아니라 역사와 실제에 존재하는 절이다.

지평선으로 해가 떠서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전북 김제시. 한반도에서 가장 너른 들판 한편에 모악산이 우뚝 서 있다.

금산사는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예로부터 호남 미륵신앙의 터전이다.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졌으니 만 1,400년이 넘었다. 견훤은 이 절에 석 달 간 갇혀있으면서 배신에 치를 떨며 자식에게 복수를 다짐했고 결국 왕건에게 갔다. 그후 1,000여 년이 흘렀다. 그 때의 주인공들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있지만 미륵정토 금산사는 그 허망한 권력싸움을 비웃듯 여전히 강건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모악산의 옛 이름은 엄뫼와 큰뫼. ‘어머니의 산’이자 ‘큰 산’이란 의미다.

사방이 평야였던 이 곳에서 모악산은 자연스럽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한자로 이름이 바뀌면서 엄뫼는 지금의 산 이름이, 큰뫼는 절 이름이 되었다.

금산사는 김제의 너른 벌판을 닮아 시원스럽고 장중하다.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면 학교 운동장만한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후백제의 비운을 기억하라는 듯 큰 소나무 한그루가 누워 있다.

육중한 절 건물들은 이 소나무를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5대 흐름 중 하나인 법상종의 원찰이었다. 모두 11개의 국보와 보물이 있어 예전의 위용을 증명한다.

중생의 머리를 절로 숙이게 하는 곳은 보물 제62호인 미륵전.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은 모두 터져 있다.

법당 안에는 10m가 넘는 미륵불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려다 본다.

머리를 조아리고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릴 수밖에 없다. 금산사에서 또 하나의 명물이었던 것은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 정면 7칸, 측면 4칸 건물로 한반도에서 옆으로는 가장 긴 법당이었는데 1987년 12월 소실됐다.

호남고속도로 금산사IC에서 빠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지난 주 ‘태조왕건’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충남 금산군의 금강변(‘상도’)

최인호씨의 원작소설을 드라마화한 ‘상도’.

진정한 상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그리고 있다. ‘상도’의 주무대는 압록강과 의주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국제적인 무역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압록강과 의주는 북녘땅. 그래서 충남 금산에 세트를 만들었다.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가 그 무대이다. 지역 주민들이 ‘마달피’라고 부르는 강변 마을이 의주 난전으로, 푸른 금강이 압록강으로 변신했다.

세트장은 강변에 아담하게 지어져 있다. 초가집이 20여 호 들어서 있다. 압록강 포구를 만들고 몇 척의 나룻배도 띄워놓았다.

금산읍에서 무주 방향의 68번 지방도로를 타다가 금강을 타고 넘는 제원교 직전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이 이어지다가 길이 끝나는데 그 곳이 마달피이다. 예로부터 ‘무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벌판’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상도’의 세트를 돌아보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교하게 만든 초가와 살림살이에 감탄이 인다.

압권은 시린 금강의 물이다. 살얼음이 살짝 얼었지만 바닥까지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잠시 넋을 잃다가 그 다음에 할 일은 본격적인 금산 여행이다.

충남 금산군은 인삼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한반도 인삼의 절반 이상이 이 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인삼 산지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어 과거의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인삼 유통의 70~80%가 이루어지고 있는 본고장이다.

인삼의 이미지에 가려 금산의 속살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금산은 빼어난 풍광과 의미 깊은 유적이 즐비한 여행 명소이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산사인 보석사와 인삼을 처음 재배했다는 개삼터, 거대한 규모의 인삼ㆍ약초 시장이 볼 만하다.

금산은 또한 먹거리 고장이기도 하다. 인근의 대도시인 대전 시민들은 금산에 ‘먹으러’ 간다.

모두 금산군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이용한 것이다. 순위를 꼽는다면 삼계탕, 어죽, 소고기 순이다. 금산군청 문화관광과 (041)750-2225

■홍류릉(‘명성황후’)

명성황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의 죽음이다.

드라마에서 명성황후는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자객(허준호)에 의해 살해당하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린 뮤직비디오 ‘나 가거든’(조수미 노래)은 이미 인기 대열에 올라있다.

세상을 떠난 명성황후는 어디에 누워있을까.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이다.

춘천이나 가평행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열차를 타고 금곡역에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춘천 방향으로의 여행길이라면 잠시 들러보는 것도 좋다.

홍유릉은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의 묘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조성돼 있다. 한반도를 통치했던 왕조의 마지막 무덤이라 생각하면 묘한 감흥이 인다.

명성황후는 처음에는 서울 청량리에 안장되었다가 고종이 승하하자 이 곳으로 옮겨져 묻혔다.

좋은 계절에 홍유릉은 인근 연인들의 좋은 데이트 장소가 된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하리만치 한산하다.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숲이 우거져 있어 연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았다. 고즈넉한 언덕에 서서 100년 가까이 능을 지키고 있는 석상들을 바라보는 맛이 괜찮다.

권오현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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