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독자적 경제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미국학자의 LA 타임스 기고내용은 최근 엔론사태의 의미와 연관시켜 볼 때 더욱 유의할 가치를 느낀다.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은, 그것을 고안해 역사축적을 이룬 국가에서조차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찰머스 존슨은 27일자 기고문에서 한국이 미국과 IMF의 경제노선을 맹신할 경우 1997년 환란과 같은 위기가 재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환란도 '미국의 성화에 못이겨' 경제기획원을 폐지한 데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고유의 모델을 개발할 것을 그는 촉구했다.
우리가 존슨의 주장에 전면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실 그의 주장은 극단성이 있으며, 논리적 골격에서 새로울 것도 없다. 미국편향의 신자유주의 폐해에 대해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이 미국의 또 다른 세계지배 도구라는 음모론까지 이미 오래 전에 대두됐다.
경제체제에도 역사의 물줄기와 같은 유행의 변화가 있다.
그 조류를 억지로 거부하게 되면 결국 고립의 함정에 빠지는 법이다.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그러한 시대적 추세이며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떤 체제도 맹목적 신앙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존슨과 같은 반(反)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대목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종교적 근본주의 만큼이나 광신적' 이라는 그의 주장은 그 역시 극단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오히려 보편타당한 경고다.
언제부턴가 국내에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선(善), 그 반대는 악(惡)으로 취급하는 제로섬식 사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부의 기본적 규제와 개입마저 죄악시하는 시장만능주의가 브레이크없는 열차처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고질적인 냄비기질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엔론 파산과 정경유착 스캔들은 '시장의 순기능'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 시스템의 모순과 허구도 드러낸 사건이다.
IMF쇼크 이후 국내의 각종 게이트들도 결국 경쟁본위 시장만능주의의 틈새에서 일어난 구조적 병폐의 일단으로 볼 수 있다.
우리와 같이 철학적 균형감각이나 사회문화적 기반, 제도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시대적 조류에 함몰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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