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억울하다고 느끼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적은단 한 번도 없어요.”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여대생 노르한(17ㆍ헬루완대 무역1)씨는 이슬람의 특성상 여성에 대한 제약이 심해 불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졸업 후 의류 사업을 할 계획이라는 그는 “이슬람 만큼 남녀 평등과 여성 존중을 강조하는 종교는없을 것”이라면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극단적 여성억압 정책을 이슬람 사회 전반의 여성관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의 지적처럼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문화 풍토나 정치상황 등에 따라 여성에 대한 대접은 천차만별이다.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집트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단 1명도 없는 여성 대사가 30 여명이나 되고, 여성 의원도 20명을 웃돈다. 4선 의원으로, 여성 최초의 상임위원장(외교위)을 지낸 릴라 타클라씨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능력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선 지난해 대학 신입생 중 여성이 무려 62%에 달했다. 8명의 부통령 중 1명이 여성이고, 여성 공무원 비율도 30%를 넘는다. 급여나 승진에서 차별도 없다. 승마와 영화감상이 취미라는 회사원 헤디에 해쉬민내자드(28)씨는 “직장에서나 개인 생활에서 모두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산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걸프 지역 국가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여성에게도 신분증을 발급키로했다. 그 동안 아버지나 남편, 형제, 이들이 죽으면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의 신분증에 이름을 올려야 했던 여성들이 법적 독립 인격체로 대우 받게된 것이다.
아직도 여성의 운전을 금지할 만큼 보수적인 풍토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카타르는 1999년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선거ㆍ피선거권을 인정한 데 이어 내년 총선에서도 여성의 참여를 허용할 방침이다. 바레인도 곧 치러질 의회 선거에 여성 참여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가족관계 등 여성의 삶에 보다 밀착된 분야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에서는 매년 수십, 수백 명의 여성들이 ‘명예 살인’으로 죽어간다.
명예 살인이란 간통 등으로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을 남편 등 가족이 죽이는 관습으로, 살인범은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요르단에서는 여성 단체가 중심이 돼 관련 법 조항 폐지운동을 수년 째 펼쳐왔지만 보수세력이 장악한 의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남자 가족의 허락 없이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집트에서는 몇 해 전 민법 개정이 이뤄져 여성의 이혼 소송권 인정을 포함해 여성의 권리가 대폭 신장됐지만, 여성의 단독 해외여행 허용은 끝내 부결됐다.
또 여성 문맹률이 이집트 50%, 모로코 48%, 리비아 34%, 사우디 36%, 쿠웨이트 26% 등으로 다른 문화권보다 월등히 높다. 의무교육 실시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법적 결혼 가능 연령이 너무 낮아 조혼이 성행하면서 초등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악습에 맞서 싸우는 여성 운동가들은 그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외부의 시각에 반대한다. 아랍여성연맹 간부인 달리아 하산씨는 “여성 억압적 관행은 종교보다는 전통과 관습의 영향이 더 크다”면서 “이집트에서 여아 할례는 이미 불법화됐고 종교 지도자들도 금지를 명했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성 운동도 ‘서구화’가 아닌, 이슬람의 평등과 여성 존중 정신에 천착해 변화의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테헤란 타임스의 마니제흐 레자포어(29)기자는 “무슬림 여성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관습마저 자신들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여성 탄압이니 뭐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면 우리 스스로 느낄 때,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최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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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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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문화부 공모담당 에크발리
“최근 공무원, 엔지니어, 의사 등전문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란 문화부의 공보담당 E. 에크발리(44)과장은 “이란이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여성에게 많은 자유와 기회를 주고 있는 나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후남녀 평등과 성 차별 철폐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 여성 사회 진출의 기폭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중 문화부가 가장 인기가 높은데 총 직원 6,000여명의 절반 이상, 그가 속한 미디어국 직원 400여명 중 70% 가까이가 여성이다. 90일간의 출산휴가를 비롯, 각종 보험 혜택, 교육자금 지원, 정년 60세 보장 등이 공무원의 큰 매력이다.
테헤란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후83년 문화부에 입성한 에크발리는 여성으로서는 미디어국내 최고위직.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등 4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여자로서 특별히 차별받은 일은 없지만 집안 살림을 병행하다 보니 남자들보다 승진 기회가 적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히잡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근에는 보수적인 공직 사회에서도 탈(脫) 차도르 바람과 함께 다양한 색깔의 히잡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최진환기자
■베일 착용의 의미와 종류
베일 착용 관습은 이슬람의 ‘여성 억압’의 상징인가.
무슬림 여성들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베일은 이슬람이 태동하기 전부터 있던 아랍 전통복식의 하나로, 코란에서 “여성은 밖으로 드러난 것 외에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이지 말라”고 적시하면서 무술림 여성 옷차림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베일은 여성이 신체 노출로 성적 도구화하는 것을 막고, ‘외양’이아닌 ‘내면’을 중시하는 건강한 남녀 관계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베일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방인의 생각과 달리 오랜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베일을 써온 무슬림들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뿐 더러 이를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에 오히려 놀란다.
베일 착용이 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30~40% 가량이 쓰지 않던 이집트에서는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한 서구화에 대한 견제와 반성의 의미로 베일 쓰기 바람이 번지고 있다.
베일은 지역에 따라 모양새도 다양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히잡’은 얼굴을 내놓고 머리에서 가슴 부위까지 늘어뜨리는 형태. 흰색 검정 등이 주종이었으나 갈수록 색과 무늬가 화려해지고 있다.
본래는 머리카락을 모두 감추고 신체 굴곡이 드러나지 않게 느슨하게 써야 하지만 요즘에는 앞머리를 살짝 늘어뜨리거나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를 목 부위에서 바짝 조여 매 멋을 내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히잡에 코 아래 얼굴 가리개가 덧붙여진 ‘니캅’은 파키스탄과 모로코에서 주로 쓴다.
‘차도르’는 넓은 검은천을 머리부터 둘러쓰는 것으로 이란에서 주로 착용한다. 안에서 손으로 여미는 부위에 따라 얼굴을 내놓을 수도 드러낼수도 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후 차도르 착용을 의무화 했지만 요즘에는 검은 외투로 대신할 수 있게 해 히잡에 짧은 외투를 걸치고 배낭을 둘러맨 파격적 차림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차도르나 외투 안에 발목과 종아리 일부가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는 패션족도 늘어 종교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부르카’는 눈 부분을 망사로 처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쓰도록 한 가장 보수적인 복장으로, 아프간과 아랍 일부 지역에서 쓴다. 아프간 탈레반이 이를 강요한 탓에 무슬림 베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낳게 한 ‘주범’이됐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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