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단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동국’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감독 이시명)’.영화를 보면 이런 논란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국 상업적 ‘마케팅’에활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영화는 가상역사에서 출발했지만, 그 착지점은 분명 철저한 오락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 장군상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동상이 서 있는 2009년.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이 실패로 끝나면서 역사는 바뀌기 시작해, 원폭이 베를린에 투하되고 UN 상임이사국인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연방수사국의 수사요원 사카모토 마사유키(장동건)은 조선계지만 조선인 테러단인 ‘후레이센진(不逞鮮人)’을 때려 잡을 때는 일본인 경찰보다 더 비정한 완벽한 일본 수사관이다.
후레이센진을 향했던 사카모토의 총구가 어떻게 일본인을 향해 돌아서게 될까.
전시장을 습격한 후레이센진을 몰살한 사카모토는 수사를 자원, 이 사건이 ‘이노우에재단’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이 한국을 계속 지배한다’는 ‘현재의 사실’이 고대 유물을 통해 100년 전으로 돌아간 이노우에의 안중근 저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밝혀지고, 사카모토는 이노우에를 막기 위해 시간의 문을 통과한다.
가상 역사가 액션을 거쳐 ‘시간을 거스르는’ 판타지로 변하면서 ‘2009 로스트…’는 상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가능성에 도전한다.
‘기이한 스토리에 관객을 얼마나 영화에 몰입시키느냐’에 감독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해법으로 등장한것이 아주 직접적이고 다양한 감정 주입이다. 우선 사카모토 마사유키와 사이고 쇼지로(나카무라 토오루)의 극단적 대립.
‘절친했던 친구의 목숨 건 대결’이라는 극적 변환을 강조하기 위해 사카모토 마사유키가 총맞아 죽은 어린 아이를 끌어 안고 울부짖는 순간과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이고 쇼지로의 행복하고도 비장한 장면을 교차 편집을 길게 반복한다.
홍콩 오우삼 감독을 좋아한다는 이시명 감독은 레퀴엠풍의 장엄한 음악으로 끊임없이 감정선을 공격한다.
‘영화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넘어선 극단적 감정주입이 못내 거슬린다.
긴박한 상황에서 화면은 툭하면 슬로모션으로 바뀌고, 주인공은 불사조처럼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한가롭게 분노하고, 울부짖고, 오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 이후 역사적 쟁점을 상업적 공식(장르영화 공식을 탈피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논외)에 따라 잘 요리했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가정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과 비록 영상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어도 충분한 액션과 물량지원(총제작비 80억원)으로 여러 세대를 아우를 만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아귀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시간의 흐름과 약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시나리오와 장르의 공식에 충실한 화법이 2시간 13분의 오락거리로 충분해 보인다. 2월1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한국과 일본, 국적이 다른 두 배우의 만남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영화 속의 장동건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영화 바깥에서 장동건은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털어놓았다.
반면 조용하지 편안한 모습의 극중 인물 사이고 쇼지로처럼 나카무라 토오루는 지나치게 점잖아 보일 정도로 말을 아꼈다.
▼장동건
‘친구’에서 투박한 부산사투리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장동건은 ‘잘생긴 배우’보다는 ‘배우’로서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난 해 청룡영화제에서는 “얼굴에서 연기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장동건이 일일이 털어놓지 않더라도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몸도 고달프고, 부담도 컸을 작품이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 연기는 배우로서는 하기 힘든 도전이었을 법하다.
“일본어로 연기할 때는 스태프마저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현장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장동건이 맡은 사카모토 마사유키는 감정변화의 폭이 큰 인물.
감정적으로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어라는 장애물과 물량공세를 퍼붓는 액션이 다행히도 그 단점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다.
장동건은 70%가 넘는 일본어 대사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나카무라 토오루가 직접 녹음해준 것을 들으면서 일본어 대사를 연습했지만, 일본어로 감정을 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역사적 가정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를 보면 수그러들 것이다. 민족보다는 역사속에서의 개인의 삶을 그리고 싶었고, 그 의도를 잘 살려냈다”며 작품에 대한 옹호도 잊지 않았다.
시사회서처음 본 완성본에 대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장동건.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배우에게는 자산이다.
▼나카무라 토오루
역사왜곡 문제로 한일간의 마찰이 빚어지던 시점에 양국의 과거사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한국영화에 출연한 나카무라 토오루는 “극적 스토리가 있는 액션영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영화에 들어있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 영화 자체의 의미, 사이고 쇼지로 역만으로도 이 영화를 선택하기에 충분했다”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보다 영화의 스케일이 크고 무겁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메시지를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하얼빈 역에서 사이고가 죽음을 앞두고 사카모토 마사유키에게 손을 내미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그는 시나리오 설정과는 다른 연기로 감독과 장동건을 당황케 했다.
그의 메시지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통했다. 장동건은 “화해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젠 엑스 캅’ ‘동경공략’등의 영화로 한국에도 이미 얼굴을 알렸던 그는 일본 뿐만 아니라 홍콩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와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검토중인 한국영화 시나리오도 한 편이 있다. 장동건의 일본어 실력에 대해 한국어로 “발음이 좋아요”라고 평가할 정도니 “한국어로 인사말 정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겸손에 가깝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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