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숨진 전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 엘리에호베이카(45) 암살 배후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호베이카는 레바논 내전(1975~90년)을 전후해 주변 정세에 따라 정치적 변신을거듭, 이스라엘과 시리아 등 이웃 국가는 물론 기독교 단체 내에서도 수많은 적을 양산해 내며 ‘공적 1호’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그의 암살배후가 밝혀질 경우이미 일촉즉발의 상태인 중동정세에 큰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레바논 정부는 우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던 1982년 9월 베이루트교외의 샤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들어 이스라엘을 배후로 꼽고 있다.
당시 호베이카 휘하의 민병대는 난민촌을 포위한 이스라엘 병력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백명을 학살했다. 이 때문에 학살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모설, 특히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 현 이스라엘 총리의 개입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83년 당시 샤론을 “종교적 적대감이 깊어 학살 가능성이 높은데도 민병대의 난민촌 난입을 방관했다”며 장관직에서 사퇴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생존자들이 지난해 6월 벨기에 법원에 샤론을 전범혐의로 제소하고 법원측이 호베이카를 주요 증인으로 채택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법원은 특히 “학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와 국방부가 주도했다”는 호베이카의 평소 증언을 근거로 3월 샤론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호베이카의 법정 증언을 막기 위해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호베이카가 85년 이후 레바논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시라아에 빌붙어 외무부 장관과 2선 의원 등을 지낸 데 대한 기독교 세력의 보복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기독교의 한 단체는 사건 후 “시리아에 충성을 맹세한 호베이카는 반역자”라는 팩스를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다.
또 헤즈볼라 등 이슬람 과격 단체들이 난민촌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를 감행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