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당 세상' / 함성호 지음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39)씨는 “사실 ‘만화 같다’는 말은 엽기적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엽기 만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라면서, “만화는 그 태동부터 바른생활 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 만화를 빌려오라는 아버지 성화에 자정에도 만화가게로 뛰어갈 정도로 만화를 ‘섭취했던’ 함씨가 만화비평서 ‘만화당 인생’(마음산책 발행)을 펴냈다.
‘만화당’은 만화 대본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함씨의 고향에서는 금은방을 부르듯 다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미국 작가 마이클 루닉의 만화 ‘누드 세일’은 성(性) 담론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성은 언제나 훔쳐보는 대상이다. 루닉 만화 속의 남자는 여자를 만지지 못하고 언제나 몰래 보기만 한다.
인간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루닉의 ‘누드 세일’에서 함씨는 현대인의 의사 소통의 단절을 걸러낸다.
말레이시아 작가 라트의 만화 ‘캄펑의 개구쟁이’에서 함씨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소녀의 시선을 발견한다.
만화가조차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 소녀는 실제로 어디에선가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본 만화에 대한 관심은 열렬하다. 일본 만화의 비장한 어두움과 심미에의 탐닉, 퇴폐와 악마적인 것에 대한 연민은 많은 사람들을 강렬하게 유혹한다.
함씨는 무라카미 모토카의 ‘龍(용)’,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 사무라 히로아키의 ‘무한의 주인’, 히데키 모리의 ‘묵공’ 등을 분석한다.
이런 만화 속에서 그는 전통에 집착하면서도 한편으로 멀어지려는 일본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찾아낸다.
몇몇 만화를 통해 일본은 짐짓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전쟁에 대한 피해의식을 은근히 전한다.
그 메시지 속에 신군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최근의 우리 만화 속에서 함씨가 발견하는 것은 ‘위반의 규칙’이다.
“80년대와 90년대의 두 양상을 보면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적과 가장 극렬하게 싸운 사람일수록 쉽게적을 닮아간다는 놀라운 실증이었다. 우리는 적을 닮지 않기 위해서 자기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만화는 스스로를 학대한다. 성적으로, 폭력적으로. 그러나 그것은 학대에 지지 않고 성장한다.
디지털이라는 분방한 영역에서조차 만화는 얽매이지 않는다. 만화는 너무나 자유로운 나머지 그 분방함을 따라잡기 위해 디지털 기술은 헉헉대며 발전해야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