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은 드넓은 바다를 두고 자신의 하버드대학이요, 예일대학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일찍이 고래잡이배를 타고 뱃사람이 된 그에게 바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 스승과 다름없었다.
얼마 전까지 철학교수를 하다가 농사꾼이 된 윤구병에게 대학과 스승은 드넓은 바다가 아니라 흙 냄새가 물신 풍기는 농촌이다.
몇해 전 그는 뭇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강단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변산반도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그는 '괴짜'라면 '괴짜'라고 할수 있다. 윤구병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골에서 보고 느낀 생각을 정리하여 책을 펴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잡초는 없다'(보리발행)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농사꾼이 된 철학 교수와 실험 학교를 일구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는 분필 냄새보다 거름 냄새와 흙 냄새가 풍긴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을 떠나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
햇볕, 공기, 물, 흙같은 온갖 자연과 서로 협력할 때 비로소 인간은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현대인이 겪고 있는 문제들도 꼼꼼히 따져보면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요즈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제도교육과 관련하여 "자연은 아이들의 가장 큰 스승이다"라고 외친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에게나 유용하냐, 그러지 않느냐에 잣대에 따라 잡초를 다른 식물과 구별짓는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식물은 하나도 없다. 하나??이 생태계의 소중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삭정이처럼 빳빳하게 굳어버린 철학자의 글이 아닌, 새봄의 새싹처럼 풋풋한 생활인의 글이라서 그 감동은 더더욱 컸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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