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지?” 류승완(29)ㆍ류승범(22) 형제는 요즘 얼굴을 자주 못 본다.감독인 형은 3월 1일에 개봉할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을 마치고 요즘 후반 작업 중이라 한숨 돌렸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겸 탤런트인 동생은 30시간씩 잠을 못자는 것은 비일비재다.
그들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2000년 6월 이후 딱 1년 반. ‘아웃사이더’ 같던 형제는 우리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두 사람,제 갈 길을 가다
“연기자가 될지 자신할 수 없다”던 류승범은 이제 국내 정상급의 개런티를 받는 모델이자 유망한 TV 탤런트가 되었다. 고교생들은 그의 ‘껄렁함’에, 대학생들은 ‘어딘지 순진해 보이는’ 매력에, 나이 든 이들은 ‘응석받이 막내처럼 귀여운’ 모습에 끌린다.
“그만 조절하지”, “간만에 책 좀 보려고 하는데 그만 갈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라는 CF의 멘트(둘 다 그의 애드립)는 유행어가 됐다.
B급 영화에 독특한 재능을 보였던 류승완 감독은 이제 제작비 20억 원이 훌쩍 넘는 전도연ㆍ이혜영 주연의 여성액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한국 영화 특집 기사에서 ‘저항의 오페라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됐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인터넷 영화의 돌풍을 일으킨 ‘다찌마와 리’ 단 두 편으로 촉망 받는 상업 영화 감독이 됐다.
▼영화와 추억에 대한 난상토론
승범=나는 다른 감독들과 연기를하다 보면 형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에너지를 발견해 줄 때가 있었다. 배우는 자기 생각을 충분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득당하기 전까지는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느 때는 감독들과 의견 충돌이 있다.
승완=사실 ‘죽거나…’ 때는 나는 여전히 배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어릴 적 돌아가신 그들의 부모도 ‘온양 귀공자’로 불리던 승범을 배우가 될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승범이가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니 나의 욕망도 바뀌는 것 같다. 다른 연기자들을 볼 때와는 다르다. 내 일부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든다.
승범=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의 철진은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골칫덩어리다. 그러나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키듯’ 철진은 어머니와 할머니 곁에 오래 남아있을 만한 아들이어서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다. 대중의 반응은 고맙다. 얼마 전 “돈이 없어 용돈을 모아서 샀다”며 300원짜리 초콜릿 한 박스를 보낸 강원도 학생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가장 불안하다. 느닷없이 ‘몰표’를 몰아주는 이 분위기를 즐기기엔 여유가 없다. 어린 친구들의 환호는 더 부담스럽고.
승완=그건 아마 승범이가 스타가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 나는 ‘다찌마와 리’ 이후 혈육으로서가 아니라 배우 류승범을 느끼게 됐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도 아슬아슬했는데 잘 넘겼다. 방송이라는 매체의 한계가 승범이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이처럼 자유로운 캐릭터를 보여준 것은 TV 연기의 지평을 넓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범이 ‘가장 닮고 싶은 선배’로 꼽은 조재현도 승범을 두고 같은 말을 했다.)
승범=선물 받은 책 중에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론’이 있어 한 번 읽어 보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래. 결론만 말하면, 내 체질은 아니다. 나는 배역에 맞추기보다 나에게 배역을 맞추는 편이다. 그래서 애드립도 가능하다. 현장 답사를 충분히 한 후 여백을 남겨둔다. 즉흥 반응할 여지다. ‘배우는 인간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형의 얘기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다. 연기는 어떻게 보면 ‘구라’다.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연기, 그게 연기 아닌가.
승완=캬! 가끔 승범에 대해 깜짝놀란다. 어려서는 둘이 많이 달랐다. 내가 오히려 귀공자였고, 승범은 가꾸는 것은 많이 해도 생긴 것으로 고민했으면 큰일 날(?) 얼굴인데. 농담이다. 승범인 운동을 잘했고, 난 꼴찌에서 항상 두번째였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일로 고민할 때 “형이 좋으면 좋은 거지”라는 승범의 말이 힘이 된다. 아내(강혜정 좋은영화사 실장)의 이성적인 충고와는 또 다르다.
승범=난 아직 내가 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직업을 그만 두면 뭘 할까 아직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직 나는 모색 중이다. 장거리 마라톤의 한가운데서.
승완=감독으로 나의 지향은 한번 비튼 장르 영화다. 선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적잖다. 그러나 그가 B급 영화에 비중을 더 두는 반면, 나의 영화는 장르 코드를 뒤트는 장르 영화다. ‘세븐 챈스’ 제너럴’의 버스터 키튼 감독처럼 슬랩스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에필로그 “사람이 변하니?"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의 감독’(류승완) ‘가출한 고교 중퇴생’(류승범)에게 이건 분명 행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출세하니 기분 좋으냐” 라고 묻든지 “옛날 어려울 때 얘기를 더 자세히 들려달라”고 주문한다.
만일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변했다”고 한마디 할 게 틀림없다.
“나는 끊임없이 변할 거고, 내일이 오늘과 달랐으면 한다. 배우는 변해야 한다. ‘변했다’는 말은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가 될 수 없다”는 승범.
그러나 형제는 은근히 겁이난다. 환호가 질타로 바뀌는 것은 순간임을 알기에. “개나 고양이만 봐도 겁이 나는데 다른 것은 더하다”는 그들.
어쩌면 겁은 그들을 타락하지않게 만드는 소금이다. 겁은 나의 힘!
■영화계를 빛내는 형제들
“친구들이 모이는 것도 좋지만 형제가 도모하는 것은 훨씬 더 수월하다. 마치 승범과 공동연출을 하는 느낌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 ‘피도 눈물도 없이’ 등 세 편의 영화에 동생 승범을 출연시킨 류승완 감독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감독-배우 형제는 ‘바보들의 행진’ ‘화분’에서 호흡을 맞춘 고 하길종-하명중 형제 이후 처음이다.
영화를 처음 선보인 것도 뤼미에르 형제였다. 외국의 영화 형제 리스트는 좀 더 풍성하지만 주로 감독 형제가 많다.
193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를 개척한 막스 형제로 시작해 ‘글라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과 ‘탑건’의 토니 스콧 형제는 작업은 따로 하지만 둘 다 흥행의 연금술사다.
‘아리조나 유괴사건’ ‘파고’의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는 꾸준히 작품을 함께 하면서 형제 감독의 전형으로 불린다.
‘제2의 코엔 형제’로 불리지만 ‘데드 프레지던트’처럼 사회성이 강한 영화를 함께 만든 알렌과 알버트 휴즈 감독 형제.
‘바운스’ ‘매트릭스’의 래리와 앤디 워쇼스키 감독은 공동 작업을 통해 ‘윈 윈’ 전략을 구사한다.
극 영화 데뷔작 ‘아메리칸 파이’로 미국 영화계를 흔든 폴과 크리스 웨이츠 형제, 화장실 유머의 전형인 ‘덤 앤 더머’ ‘킹핀’을 만든 것은 바비와 피렐리 형제이다.
‘무서운 영화’는 키넌, 숀, 말론 웨인스 삼형제의 작품. 키넌이 감독을, 두 동생이 시나리오는 물론 배우로도 출연했다.
작업을 함께 하는 감독들의 특징은 뚜렷하게 색깔 있는 영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장르 영화’를 고집하는 류승완 감독이 류승범과 앞으로 어떤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 낼지 관심이다.
하지만 류승범은 “형의 영화에서는 난 아직은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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