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이상수(39)씨가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길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이상수씨는 언론계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기자로 소문 나 있다.대학 졸업 후 선반 노동자로 일하다가 늦깎이로 신문사 일을 시작한 그는 바쁜 직장 생활에서 짬을 내 대학원에 다니며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씨의 전공은 중국철한인데,자기만 공부하기가 미안했던 지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맹자'를 읽었고,동료들의 성원이 이어지자 내친 김에 '노자'까지를 강독했다고 한다.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쏟연 열정의 여진이 새 직장을 일종의 야학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은 중국 철학 입문서다.그러나 이 책은 무뚝뚝한 교과서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문제는 발랄하고 설명은 자상해 이야기 책을 읽는 느낌이다.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공자,노자,묵자,손자 네 사람이다.
이 네 고대 중국인을 탐색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더러 유럽이나 현대 한국 같은 샛길로 빠지며 승객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서른이 되어서야 '현실'을 '이상'에 맞게 바꾸려는 일이란 석탄을 씻어 검은 물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됐던 자신의 20대를 한탄하고 있지만,육체노동자 출신의 '좌파 사상가'묵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완전히 '전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발랄하면서도 진지하기는 쉽지 않은데,'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이 바로 그런 드문 경우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 전통과 중국 철학 전통의 핵심을 각각 '논쟁'과 '덕쟁'으로 정리한 뒤 덕쟁의 무늬들을 탐색한다.형식논리학으로 대표되는 '논쟁'의 위세가 너무 커 저자가 부러 '덕쟁'의 미덕을 표나게 내세우기도 하지만,이 책이 '덕쟁' 찬양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덕이 언어로 가둘 수 있는 개념이 아니어서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어렵고,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덕의 판단기준으로 내세웠던 '민심'이라는 것도 전체주의를 경험한 이후의 세계에서는 사회구성원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약용의 시를 읽다가 떠오렸다는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표제는 이책에 실린 마지막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중원의 사유와 구별되는 오랑캐의 사유는,저자에 따르면,역사를 자기중심으로 조직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이 소수파의 철학,변두리의 철학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귀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관용의 밑받침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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