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을 남긴 근대소설의 선구자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ㆍ1900~1943)이 말년에 재기를 꿈꾸며 머물던 인왕산 자락의 자택이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 빙허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은 흉물스럽게 변한 채 내려앉기 일보직전이다.얼기설기 쳐진 낡은 천막이 붕괴 직전의 집을 겨우 지탱하고 있고, 마당에는 깨진 기와와 쓰레기 더미만 수북이 쌓여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325의2에 위치한 이 집은 빙허가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던 중 일장기 말살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손수 닭을 치며 역사소설 ‘무영탑’ ‘흑치상지’ 등을 집필한 곳.
이후 그는 독립운동을 하던 형의 옥사, 소설 연재 중단 등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초가로 옮겼으나 결국 빈곤과 병마로 세상을 떠났다.
빙허의 생가인 대구 계산동과 ‘빈처’의 산실인 서울 관훈동 고택은 개발로 지번조차 흔적없이 사라져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현재 부암동 집이 유일하다.
부암동 집은 94년 ‘서울시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 당시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경교장’과 함께 문화재 지정 계획에 포함됐으나 문화재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집의 현재 주인은 빙허와는 관계가 없는 정모(사업)씨. 과거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기념관이나 미술관을 짓기 위해 집을 사려했지만, 같은 필지내에 정씨의 동생(51)이 살고 있는 윗집까지 포함하면 집터가 넓어 모두 포기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측은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도 폐가로 방치한 채 서울시가 표석만 설치하려는 것은 오히려 우리 문화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임형택(林熒澤ㆍ한문학) 교수는 “건물 자체의 가치보다 빙허의 자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예산을 배정해 ‘현진건 기념관’으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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