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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金相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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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金相玉

입력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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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22일일제하 독립운동가 김상옥이 자결했다. 향년 33세. 김상옥은 서울 출신이다. 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말편자를만들어 파는 일에 종사했다.1919년 3ㆍ1 운동 뒤 민족해방운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가까운 벗들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혁신단’을 조직하는 한편, 광복단ㆍ의열단 등의 단체에 가입해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군자금 모금, 일제 기관 파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22년 의열단의 명령으로 서울에 잠입한 김상옥은 이듬해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다수의 일본 경찰을 죽인 뒤, 공개 수배를 받고 피신해 다니다가 그 달22일 1,000여명의 경찰대와 접전 중 최후일발로 자결했다.

순국 이듬해인 1924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趙素昻)이 그의 전기를 써 간행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하의 무장독립투쟁이나 테러활동 같은 직접적 민족해방운동은 대체로 민족구성원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79년전 오늘 자결한 김상옥 의사도 그 예다.

조선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던 왕족이나 양반을 비롯한 상층 계급에서 무력 독립운동의 투사들이 거의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사의 슬픈 부분이다. 누리는 사람들은 늘 누리기만 했고, 고생한 사람들은 늘 고생만 했다는 뜻이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주류’라고 지칭되는 각 부분의 권력 핵심부는 일제하의 친일파와 깊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자칭‘주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명예심이다. 그들은 친일을 외치던 그 입으로 해방된 조국에서 애국을 외치면서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만큼 둔감하거나 교활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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