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군 철수 요구설을 계기로 양국간 군사관계와 사우디 주둔 공군기지의 전략적 가치는 물론 미국의 총체적 대 중동 군사전략의 수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등 미국 고위 관리들은 이 같은 설을 부인했으나, 사우디의 정치적 입지, 미군에 대한 국민 정서, 그 동안 격하돼 온 양국의 군사관계 등을 볼 때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양국의 군사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이유로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에 설치한 최첨단 ‘통합공중작전센터’의 폐쇄를 미국에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세에 점령당한 역사가 없는 사우디의이 같은 정책 변화는 겉으로 나마 미국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메카와 메디나 등 이슬람 성지에 대한 종교적 의무를 더욱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미국에 동조한다는 아랍권과 국민들의 정치적 비난여론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뇌졸중 등으로 업무능력을 상실한 파드 국왕 대신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압둘라 왕자는 그 동안 미군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사우디 안보에 유리하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라크 공습을 위한 사우디 기지 사용 금지 등 최근 일련의 제재조치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양국의 고민은 미군 기지 철수가 자칫 오사마 빈 라덴이 주장한 ‘사우디에서의 미군 축출’이라는 명분에 굴복한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더욱이 미국은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등의 기지로 이전하기에는 이들 국가의 미군기지가 포화 상태이다. 미국은 프린스 술탄 기지가 폐쇄되면 이라크에 대한 억지력을 상실할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걸프전 때 50만 명의병력을 주둔시키기도 했던 미군은 당시 “임무가 완성되면 철수한다”고 사우디와 구두 약속했으나, 임무의 정의를 놓고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 축출’로 해석한 사우디와 ‘후세인 정권 타도’로 의미 부여한 미국은 마찰을 빚어왔다.
현재 5,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사우디는 걸프 지역국가 중 미국과 어떤 형태로도 공식적 방위협정을 맺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황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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