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죠? 제 아버지가?”‘겨울연가’(KBS2, 월ㆍ화요일 오후9시50분)의 준상(배용준)은 엄마 강미희에게 묻지만, 엄마는 “죽었다”고 답한다.
‘그 햇살이 나에게’(MBC, 수ㆍ목요일 오후 9시55분)에서는 지금껏 언니인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친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우(김소연)가 “내 아버지는 누구야?”라고 따진다.
‘지금은 연애중’(SBS,수ㆍ목 오후 9시55분)의 차희(최윤영)도 아버지가 바람둥이 유부남이었다는 사실만 알 뿐 누군지 모른다.
드라마에 ‘출생의 비밀’이 유행하고 있다.
출생이 석연치 않은 인물이 등장해 자신의 출생을 파헤치려 하고, 누군가는 그 과거를 덮으려고 한다.
알고 보니 이복형제(‘수호천사’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알고 보니 이복남매(‘그 여자네 집’) 식이다.
‘겨울연가’는 앞으로는 기억상실이 드라마 전개상 중요한 고리가 될 테지만, 도입부에서 출생의 비밀을 미끼로 세 주인공 준상, 유진(최지우), 상혁(박용우)의 관계를 뒤흔들어 버렸다.
불에 타다 남은 흑백사진을 통해서 상혁의 아버지 김진우가 친아버지라고 확신했던 준상은 유진의 집에서 또 다른 사진을 발견하면서 친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오해를 하고 만다.
준상의 어머니와 유진, 상혁의 아버지가 고교시절 삼각관계였음을 알게 되면서, 준상은 유진과 이복남매간일지도 모른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
‘그 햇살이 나에게’는 여주인공 연우의 가정환경을 보다 파격적으로 설정했다.
친 엄마 연숙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연우를 낳았기 때문에 연우는 엄마에게 딸이 아닌 동생이 되야 했다.
친엄마는 굳이 감추려했지만, 연우는 자신이 쇼 호스트로 근무하는 홈쇼핑회사의 사장 최태경이 친아버지라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됐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로서, 60년대 가부장제에서 남성의 도덕적 이탈의 상징으로 신파극에서 써먹던 진부한 설정을 요즘 드라마가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순수혈통을 중요시하고, 가족의 해체를 두려워하던 과거 우리의 정서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비극이자 충격이었다.
그래서 감출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혼 가정이 늘어나는 등 가족의 울타리가 느슨해진 요즘도 출생의 비밀이 그처럼 위험하고 파격적인 요소일까.
개인의 존재에 핏줄이 과거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의문이다.
‘그 햇살이 나에게’의 작가 김인영씨는 “진부한 소재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골격을 이루는 남녀의 사랑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비밀에 가려진 출생의 전모를 밝혀가는 과정은 진실을 밝혀가는 미스터리와 닮아 있어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매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인 셈이다.
때문에 ‘겨울연가’의 윤석호 PD는 전작 ‘가을동화’에서, 김인영씨 또한 ‘맛있는 청혼’에서도 ‘출생의 비밀’이라는 장치를 활용했다.
윤 PD는 “드라마 전개에 아주 사소하게 작용할 뿐 순수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했고, 김인영씨는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외적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복제까지 거듭하면서 등장인물에 출생의 비밀을 설정하는 것은 전작의 성공에 기대보려는 얄팍한 계산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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