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나무를 세는 것도 공부’라고 믿는 젊은 사학자 강판권(41)씨가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라는 좀 별난 책을 내 놨다.
박달나무, 은행나무, 산벚나무, 벽오동 등 열 여섯 종류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기 얽힌 역사와 신화를 더듬어 본 책이다.
나무를 세는 게 공부라니 무슨 뜻인가.
지은이는 옛 사람들의 공부법인 성리학적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천법으로서 ‘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한다’는 근사(近思)를 내세운다.
그것이야말로 주변의 개별사물을 살펴 보편적 이치를 깨닫는 격물치지의 길이자 요즘 흔히 거론되는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중국사를 전공하고 중국 농업경제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나무 공부에 빠진것은 1년 전.
집 주변, 출강하는 대학 교정 등 가는 데마다 나무를 세고 살피고 옛 기록과 책을 뒤져 내력을 파악하고 나무를 찾아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나무에서 역사를 보고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는 목적으로 출발한 만큼 식물학적 정보는 이 책의 핵심이 아니다.
대신 역사적 상상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복사나무를 보면서 삼국지 주인공 유비ㆍ관우ㆍ장비의 도원결의며, 복사꽃만발한 무릉도원을 꿈꾼 중국 시인 도연명을 생각하고, 은행나무 항목에서는 은행나무와 유교의 관계를, 배롱나무에 이르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왜 이 나무를 사랑했는지 짐작해보는 식이다.
나무마다 깃든 사연을 더듬다가 오늘의 세태를 돌아보는 여유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벽오동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라는 시조에서 옛 선비들이 품었던 큰 뜻을 헤아리고 오늘날 지식인이 추구할 참된 길을 생각한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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