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2000년 12월 출간돼 화제를 모은 ‘왕릉풍수와 조선의 역사’(장영훈 지음)가 죽은 자가 묻힌 음택(陰宅ㆍ묘)에 관한 것이라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는 사람 사는 양택(陽宅ㆍ집)에 관한 책이다.
전자가 조선왕릉 25기의 풍수를 논했다면, 후자는 명문가 15곳의 탄생배경을 그 고택의 풍수와 가문의 비범한 도덕성에서 찾았다.
책은 우선 양택 풍수로 읽힌다.
고택의 풍수가 그 집안의 내력과 현재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경북 영양군 일월면의 시인 조지훈 종택이다. 370여 년 된 이 집 앞에는 붓 모양의 문필봉(文筆峰)이 있는데, 이 문필봉을 바라보는 집안에서는 학자가 나온다고 한다.
조동일(서울대 교수) 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 조동원(전성균관대 부총장)씨 등 한국 인문학의 석학들이 이 집안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인 조용헌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풍수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 가문이 명문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 고택이 100~500년 이상 버텨올 수 있었던 배경을 그 집안의 엄격한 도덕성과 선행에서 찾았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천 년을 지탱케 한 철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특권계층의 도덕성)’를 꼽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작인 1만 명이 주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커다란 우산을 만들어줬다는 전주 이씨 완풍 종가인 강릉 선교장,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해 후손 중 11명이 훈장을 받은 경북 안동학봉 종택(퇴계 제자인 학봉 김성일이 세운 고택) 등에서 저자는 명문가의 필요조건을 발견한 것이다.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부잣집(경북 경주시 교동)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책의 백미다.
1년 쌀 소작량 3,000석 중에서 1,000석은 과객 대접에, 또 1,000석은 빈민 구제에 쓴 집안이 바로 최부잣집이었다.
‘자처초연(自處超然) 대인애연(對人靄然)’(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라)이라는 이 집안의 가훈은 결코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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