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요 요인이 이 지역에 밀집한 사설 학원가로 지목되면서 '고교 평준화 해제 문제'가 재론되고 있다.일부에서 "부실한 공교육으로 학생들이 사설 학원으로 몰린다면 사립학교라도 평준화에서 해제해 학생들의 욕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데 대해 "평준화 해제는 오히려 중학교에서부터 입시 바람을 몰고 와 사교육비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찬성-윤정일(서울대 교육행정연수원 원장)
특정한 교육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혹은 수정 보완할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그 정책 목표가 충실히 달성되고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중학교육 정상화, 고교간 격차 해소, 과학ㆍ실업교육 진흥, 지역간 교육균형 발전, 사교육비 경감, 대도시 인구집중 억제를 목적으로 1974년에 도입되어 28년간 실시되어 왔다.
평준화정책은 초기에는 정책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였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성과는 줄어들고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도입 당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학생의 학교 선택권제약, 학습집단의 이질화로 인한 학습지도 곤란, 사학 교육의 위축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보완책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문제가 치유되기보다는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가 평준화 적용을 받으면서 강남 학원 특구로 학생이동이 폭증하여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평준화로 중학 교육이 정상화되고, 과학·실업교육이 진흥되고, 사교육비가 경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학교교육이 붕괴된다는 것은 교원, 학부모, 학생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평준화정책은 학교교육 붕괴를 초래하고 가속화하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교육 붕괴현상이 비평준화지역보다 평준화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학교는 졸업장을 받기 위해 가는 곳이고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는 학생들의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가?
학생들을 상, 중, 하로 구분할 때 한 반의 3분의 1만 공부를 하고 나머지는 학교수업에 적응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소란을 피우고 사설학원에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공부를 하게 된다.
몇 차례의 교육개혁에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의 수월성이 강조되고, 수요자 중심교육이 강조되었다.
최근 신자유주의 이념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유로운 경쟁과 선택이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정착되었다.
평준화정책의 이념과 목표는 이러한 교육개혁의 방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며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준화정책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대폭 수정·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사립학교는 평준화정책 대상에서 제외함을 원칙으로 하되 희망하는 사학에 한하여 평준화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함과 동시에 사학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보장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평준화 지역 내에서도 학교의 특성화·다양화가 적극 추진될 수 있도록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여 단위학교 책임경영이 실질적으로 가능토록 해야 한다.
셋째,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도록 평준화 지역 내에서 선지원 후 추첨제를 확대 실시하고, 학교 내에서 교육프로그램 선택폭을 확대하여야 한다.
넷째, 고교 교육체제의 특성화·다양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고교의 특수성을 대학입시 전형에서 적극 반영하여야 한다.
▶반대-최현섭(강원대학교 사회교육학부 교수)
서울 강남의 집 값 급등을 계기로 고교 평준화 해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한 생각이 든다. 우선, 집 값 상승 원인이 좋은 학원 근접성에 있다면 특별한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 어색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용을 들여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탈세와 불법인데, 그것은 평소 법적용과 감시를 철저히 하면 되고, 필요하면 법령을 고치면 된다.
이를 고교 평준화 폐지론으로 이어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고교 평준화는 사교육 열풍과 집값 상승의 원인이 아니다. 결정적 원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류대학을 보내려는 집착에 가까운 학부모들의 열망이다.
또한, 진정한 인재란 공부 벌레가 아니라 사회 봉사와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사람이라는 참 인재관의 미정착, 편가르기를 일삼는 패거리문화와 그에 결합한 학벌주의, 그리고 일등과 일류가 모든 것을 누리고 꼴찌와 삼류는 대접을 못받는 일등독점주의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요인이 버티는 한, 어떠한 방법도 기형적 교육열과 사교육비 증가를 막을 수 없으며, 집값 상승보다 더한 일도 나타날 수도 있다.
더구나, 평준화를 해제하면 대학입시에 더해 일류고 열풍까지 겹쳐 학생, 학부모와 교육의 고통은극심해질 것이다.
사립학교는 평준화에서 예외를 두자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고기를 잡자는데 등산 방법을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맹모삼천지교는 막기도 어렵지만 막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사람되는 공부를 시키고 부모가 자녀 교육에 인생과 자존심을 몽땅 거는 것을 막을 방법은 있다.
문제의 핵심은 평준화 비평준화가 아니라, 일류대학의 선발 방식이다. 일류대가 학생을 어떤 방식으로 선발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일류대학이 사회 봉사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뽑고 기른다면 교육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시험점수가 높고 경시대회 우수자라 하더라도 이웃에 봉사하고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생활을 꾸준히 하지 않은 학생을 탈락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 인재 양성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문화가 뿌리 내릴 때까지 이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간다면,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여기에 재학생에게 입학만 하면 끝이 아니라, 존경 받는 일류대생이 되기 위해서는 입학 후에도 끊임없이 단련하도록 하는 인식과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수능등급이 3,4등급인 학생 중에서도 봉사정신과 정의감이 강한 학생을 일정 비율 뽑는 할당제를 실시하고 그들에 대한 학력 보충 제도를 별도로 도입하면 평준화 문제점도 부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서울 강남에 고급학원이 넘쳐나고 아파트가격이 올라가는 것에 대한 원인을 고교평준화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무리다.
평준화를 해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평준화를 해제할 경우 더욱 심각한 혼란이 야기되고 중학교 교육까지도 황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고교평준화 정책
▲고교 평준화 정책 전개
고등학교를 선택 지원하던 입시제도가 일류고 진학 경쟁을 부추겨 과열과외, 재수생양산 등 많은 사회적 교육적 문제를 야기하자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됐다.
서울 부산에 이어 1975년 대구, 인천, 광주가 추가 적용되었고, 이어 계속적으로 지역을 확대했다. 2002학년도 부터 경기의 안양 부천 고양 과천 의왕 군포 등 6개시에서 평준화가 새롭게 실시돼 현재 12개 시도23개시에서 시행중이다. 학교 수는 전체 인문고의 51% 수준.
▲평준화 정책의 보완
고교 평준화 정책이 고교 진학을 위한 과열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를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교육의 하향평준화,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교육의 획일화, 사립고의 자율성 제한 등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90년대 들어 과학고, 외국어고 등 다양한 유형의 특수목적고 설립, 보충수업 및 교과별 이동 수업 등을 실시했다.
지난해 학생선발, 교과과정, 등록금 책정 등에서 자율권을 가진 자립형 사립고 허용도 이런 맥락에서 도입됐다.
당초 전국 30여개 학교에서 시범운영할 계획이었지만 "귀족학교로 변질돼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5개교만 시범 학교로 지정됐다.
▲외국 사례와 쟁점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구에서는 대부분 공립은 거주지역에 따라 학교를 배치받는 학구제인 반면, 사립학교는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공립 학교는 평준화라고 할 수 있지만 사립학교는 학생의 선택과 경쟁에 따라 진학한다.
단 사립은 수업료가 매우 비싸다. 일본의 경우 사립학교가 여건이 미비할 경우 평준화의 틀에 포함될 수 있지만, 원한다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립학교까지 평준화를 적용하는 것은 유례가 없고 획일적 하향평준화 교육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은 1995년 평준화가 학력저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결론 맺었으며,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도 1999년 평준화 고교의 학업성취도가 비평준화 고교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를 보고 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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