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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엔론과 프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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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엔론과 프레첼

입력
2002.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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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엔론(Enron)과 프레첼(Pretzel)이 한껏 고양된 부시 대통령에게 낙상(落傷)을 입혔다.원기왕성한 장년이라 큰 탈은 없다지만, 정치적 후유증은 가볍지 않을 조짐이다. 대 테러 전쟁으로 유례없는 국민 지지를 받는 대통령도 무상한 정치 변화는 비껴 갈 수 없는 모양이다.

초강대국 대통령이 잠시나마 졸도하는 사태를 낳은 프레첼은 기도할 때 두 손을 깍지 낀 형태로 바싹 구워 소금을 뿌린 마른 빵이다.

독일 수도원에서 실수로 오래 구워 나온 담백한 빵이 원조라거나, 이탈리아 수도원이 동자승들에게 작은 상(pretiolas)으로 내리던 빵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유럽보다 미국 노점에서 많이 파는 저지방 저칼로리 스낵으로, 스포츠 관람과 TV 시청 때 심심풀이에 요긴한 우리의 뻥튀기같은 존재다.

부시도 일요일 저녁 미식축구 중계를 보면서 이 풍요한 나라의 국민적 스낵을 즐기다 빵 조각이 걸려 숨이 막히는 바람에 실신했다고 한다.

어딘지 안정감이 부족한 부시다운 해프닝이다. 그러나 그는 얼굴 상처를 드러낸 채 "프레첼은 늘 잘 씹어 삼키라는 엄마 말씀을 잊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니 바바라의 푸근한 이미지를 이용, 자신처럼 프레첼과 축구 중계를 즐긴 국민의 대통령 건강 걱정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다.

토크쇼 사회자들이 재담거리로 삼은 데서 상황 반전 시도는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해프닝의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 언론은 부시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국빈 만찬 도중 음식을 토하며 3분간이나 의식을 잃은 사건을 언급, 부자의 체질이 닮았다고 시사하는데 머물렀다.

반면 외부 언론은 걸프전으로 치솟은 아버지 부시의 인기가 졸도 사건을 계기로 급전 직하, 떼논 당상으로 여긴 재선 실패로 이어졌다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를 거론했다.

공연한 시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취임 1년을 앞두고 공교롭게 프레첼 낙상과 엔론 게이트가 겹친 것은 예사롭지 않다.

텍사스가 본거지인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파산하면서 텍사스 석유 자본이 기반인 부시 행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엔론 사주의 친구 부시가 선거자금 62만 달러를 받았고, 체니 부통령과 오닐 재무, 에번스 상무, 에슈크로포트 법무, 로브 수석보좌관 등 측근이 줄줄이 연루됐다.

이 가운데는 엔론출신도 여럿 있다.

의혹의 핵심은 파산 기미를 알고도 모른체 했느냐는 것이다.

엔론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채가 쌓인 것을 은폐했다가 지난해 말 300억 달러 부채를 남긴 채 파산했다.

엔론 측은 파산 전 퇴직금 기금 수십억 달러를 자사 주식에 투자한 종업원 2만명에게는 주식 매각을 막으면서, 사주와 경영진은 몰래 내다팔아 10억 달러 이상을 챙겼다.

종업원들은 85달러에서 70센트로 폭락한 휴지 조각만 남았고, 일반 투자자 수백만 명도 큰 손해를 봤다.

부시측은 유착이나 비호 의혹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그러나 체니 부통령이 지난 해 여섯 차례나 엔론과 접촉한 사실에 비춰, 의회와 검찰 조사에서 어떤 비리 혐의가 드러날 지 알 수 없다.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 때부터 엔론의 급성장을 지원했고, 에너지 정책까지 협의했다는 등의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올 가을 중간 선거를 앞둔 부시로서는 지뢰밭에 들어선 형국이다. 민생과 직결된 엔론 게이트는 국민 관심을 국내 정치로 되돌릴 것이고, 전쟁으로 고양된 민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텍사스 석유 자본의 대표 선수 격인 부시의 친 기업적 에너지 환경 정책에 불만인 민주당도 반격에호재를 만났다.

아프간 전쟁이 석유 이권을 노린 것이라는 비판도 힘을 얻을 것이다.

미국이 지난 99년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위협을 갑자기 부풀린것이 공화당의 정략이라는 폭로성 보도도 심상치 않게 보인다.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이 지나친 보수 성향 때문에 종전과 동시에 외면당한 선례까지 벌써 거론된다.

국제 정세를 좌우할 미국 정치의 대세 역전 드라마가 펼쳐질지 주목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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