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27일 수원지법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삼성전자와 전ㆍ현직 임원들에게 1,0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연말 기업체 임직원들을 크게 위축시키는 소식이었다.
소액주주가 회사를 대표하여 제기한 대표소송에서 법원이 이사들의 경영판단을 엉터리로 보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명하였기 때문이다.
이 판결로 볼 때 재판부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한국적 시장메커니즘하의 기업활동에 대해 재판부가 지나친 요구를 하여 판결이 균형을 잃었다는 인상도 받는다.
기업활동을 제약할 것이 분명한 이 판결과 관련한 핵심 쟁점들을 살펴 본다.
첫째 삼성전자의 이천전기 출자에 관한 점이다.
법원은 이사회가 한 시간 동안의 토의 만으로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거수기이사회는 보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편의 모델인 미국 공개 기업들의 경우 이사회(board) 개최 횟수는 연 3~5회에 불과하다.
회사경영은 실제로 최고경영자를 보스로 하는 임원(officer)진에 맡겨지고, 이사회는 대체로 점잖은 거수기에 머문다.
물론 이사회는 회사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나 최고경영자의 경영실패를 문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각해 보라. 과반수 이상의 사외이사가 참여해 일년에 단 몇 차례 열리는 이사회에서 시장예측, 지분인수의 득과 실, 주식시장의 동향과 인수시점을 판단할 자료를 모두 확보해서 상세하게 검토하는 것이 가능 하겠는가.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극비리에 또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M&A의 성질상, 이사회는 실무자의 경영판단에 의지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기업 경영상 합리적이지 않은가.
둘째 삼성종합화학 지분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판단 역시 전형적인 경영판단에 대한 법원의 부당한 간섭이다.
비상장주식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어렵다. 임원들이 그 당시 시행되던 상속세법 시행령상의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에 따라 가액산정을 하였다면, 또 이것이 법령상 제시된 유일한 기준이었다면, 법원은이에 따른 경영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법령을 떠난 다른 기준을 사후적인 관점에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게다가 이 지분매각은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신속한 구조조정이 성공했음은 오늘날의 주가가 웅변하고 있으며, 이 점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경영판단에 대한 궁극적 평가자는 법원이 아니라 시장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제공한 75억원의 정치헌금을 손해로 인정한 판단 역시 문제다.
임원들의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하는 회사법적 관점에서는 헌금으로 인한 비용부담과 삼성그룹의 유형, 무형의 편익이 비교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정치헌금 규제법이 아닌 회사법 차원에서 공개적 정치헌금과 비공개적인 정치헌금을 나누어 전자는 손실이 아닌 반면 후자는 손실이라고 평가하는것은 적절치 않다.
일본 야하다 제철이 자민당에 낸 정치헌금이 선량한 풍속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도 있다.
이 사건 재판부의 판단은 당연히 일리가 있다. 법이 지배하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는 도덕적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이 판결에는 재벌들이 고비용의 정치구조를 더 이상 지탱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개별기업 임원들의 회사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이고, 이에관한 판단은 회사법의 논리에 충실하면서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법원의 기업에 대한 과중한 도덕적 요구도 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다. 효율성을 지향하는 영리 집단일 따름이다. *이 기고는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호열 성균관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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