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통치수단 유혹 제도적으로 끊어야"≪검찰이 전 국민적인 개혁요구에 직면해 있다. 검찰이 독점적 수사권의 자의적 행사로 불신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갈 데까지 간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이정치권과의 유착을 넘어 벤처 사기꾼, 조폭 등 주변부 인물들과도 연계되는 일까지 빚어지면서 사법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검찰을 바로 세우지않고서는 국가 사회가 제대로 설 수 없는 법.
전문가들을 초청, 오늘날 검찰이 처한 위기상황을 총체적으로 짚어보고 대안들을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정성진= 이번 검찰총장사퇴는 어찌 됐든 불행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인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됐습니다.
박원순 = 권력은 집중되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막기 위한 시스템의 핵심이 권력분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임검사부터 검찰총장까지 모두 검사 동일체의식으로 뭉쳐 있습니다.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지요.
뉴욕경찰의 감사인력은 전원 외부인사로 충원되고, 뉴질랜드의 법무부국장급 이상 간부들 중에는 수십 년 변호사를 한 사람이 태반입니다.
강병태 =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 모든 시스템이 여전히 권위주의시대 국가중심주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문제죠.
정성진= 사실 검찰 뿐 아니라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마다 권력집중의 문제는 비슷합니다. 인사문제, 검찰 수뇌부의 자세, 엄정한 법 집행 등에서 새로운 분위기 진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검찰총장 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반의 제도적 문제, 국정운영 전반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강병태=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도 검찰이 권력의 압력을 받았지만 문민시대 이후처럼 검찰이 문제가되고 이로 인해 권력이 상처받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운용상의 문제, 사람의 문제도 무시할수 없다는 겁니다. 검찰과 권력의 관계가 오히려 전보다 왜곡된 측면이 있어요.
정성진= 동감합니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 향수를 가져서는 안되지만지금 국정운영은 시스템보다는 통치권자가 편한 대로, 사람중심으로 운영하는 느낌이에요. 한정된 인사 풀에서 사람을 고르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국민불신을 조장합니다. 사람중심, 끼리끼리 의식에서 벗어나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박원순= 지금까지 뼈를 깎는 아픔과 각성을 어디 한두 번 했습니까. 이제는 왜 안 되는가 하는 측면에 주목할 때입니다. 검찰총장에 대한 국회동의, 즉 인사청문회가 필요하고 예민한 정치적 의혹사안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신설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특검조사에서 검찰총장 동생이 돈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제도 문제를 좀 더 언급하자면 우리처럼 검찰권이 독점된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은 기소대배심이 있어 일반 시민이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로 일정요건을 갖춘 사안은 무조건기소토록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검사의 부당한 수사에 대해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청와대 파견검사가 다시 검찰에 복귀합니다. 이들이 정치권력과 검찰의 통로가 될 것은 뻔한 일이죠. 상명하복의 원칙이란 것도 그래요.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당연히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병태 =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법체제에 특검제가 맞지 않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도 포기한 바 있고요. 특검제보다는 기존의정상적 사법체계가 제 역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정성진 = 미국의예에서 특검제의 실효성 문제, 특히 여론에 휘둘릴 우려 등이 제기됐는데,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운영해 보니 의외로국민기대에 부응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때문에 이제는 긍정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무리없이 수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강병태 = 지역패거리의식으로 인해 검찰이 권력과 공생관계, 심한 경우 공동운명체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권력마저도 실패하고 결국 함께 추락하는 양상이라는 거지요.
박원순= 검찰이 권력의 전리품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모여당 인사가 “검찰 없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느냐”고 말하더군요. 야당시절에는 검찰개혁을 얘기하다 집권하면 유착하는 거지요. 인사권이 대통령 1인에 집중한 체제하에서는 모든 검사들이 그 의중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래서는 공정한 검찰권 행사가 힘듭니다.
명령에 대해 견제가 안 되는 풍토에서 ‘검사들 힘내라’는 격려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중립적 인사위원회가 시급합니다. 미국은 차관급 이상 공직자에 대해 모두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성진=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사권자를 포함한 정치권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YS, DJ 모두 과거 공안정국에서 피해를 입어 검찰에 대한 구원(舊怨)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집권 후 검찰장악을 위해 동문과 동향 사람들을 요직에 배치했습니다. 무엇보다 통치권자가 검찰을 통치수단으로 삼는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강병태= 인사위원회 구성을 유독 검찰만 따로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인사권자가 국민여론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사를 하고, 검찰을 장악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겠지요. 국민의 정부들어서도 인사를 바로잡는다면서 자기들 사람만 심었습니다. 정치권력과 대립하는 검찰본연의 자세를 방기하는 상황이 초래된 거죠.
정성진= 개개 검사, 특히 수뇌부의 의식과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법률기능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법률지사(志士), 내지는 법률경영인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었다면 현재의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검찰 간부진의 의식쇄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여론에 의한 감시, 자기통제가 중요합니다. 거기에다 스스로를 무오류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은연중의 자만심과 오만을 버리고 국민여론을직시하면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박원순= 법학도 시절 누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격언에 매료되지 않습니까? 일본 자민당의 실세였던 가네마루 신(金丸信)이 단순 벌금형으로 기소됐을때 삿포로 고등검사장은 아사히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도쿄지검 후배들의 수사를 문제 삼았습니다. 검찰 고위간부들이가져야 할 자세를 웅변해주는 일화입니다.
강병태= 직업으로서 검사가 갖는 사회적 위상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듭니다. 과거 검사는 엘리트적 자부심과 사명감의 결합으로 사회주류를 이뤘지만 점차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지금은 상황이전 같지 않습니다.
정성진=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법치주의에 대한 존경심이 강화돼야 합니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준법의식에 따르면 ‘법을 지키지 않을수도 있다’는 응답이 25%에 달했고 젊은 층일수록 응답비율이 높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검찰이 제대로기능하기 어렵습니다.
박원순=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에 용감히 맞서는 모습을 검찰이 보여줘야 신뢰가 쌓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하면서 각종 주주총회 때 훼방을 놓는 ‘총회꾼’을 증거와 함께 고발했는데도 서울지검은 이를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도쿄지검은 노무라증권의 총회꾼 사건을 처리하면서그 이면을 파헤쳐 희대의 정경유착 사건을 밝혀냈지요.
강병태= 대통령이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정성진= 특별수사검찰청 설치 문제는 특검제의 상설적 도입에 대한 대응논리로 법무부 등에서 거론되는 안입니다.
특검제 전면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 못한 채 나온 고육책이자 여론 무마책으로 보입니다. 결국 논란은 기존 검찰조직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성 있게운영될 것인가에 귀착될 듯 합니다. 하지만 상설적 특검제가 아닌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로 검찰에 대한 비판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박원순= 특별수사검찰청 아이디어는 타협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설치한다면 검찰총장 지위와는 별도로 독립적으로수사토록 법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호주의 사례처럼 수사권 이원화도 문제될 것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수사권이 배타적으로너무 한 곳(검찰)에 집중돼 있지요.
강병태= 특검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지요. 특검제는 그동안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설화할 경우 기능여부를 떠나 어떤 사건을 맡기느냐가 논란이 될 듯 합니다.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회나 여론의 압력에의해 구체적 수사 대상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성진=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는 정부 신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 정권이 국민요구에 따라 부패방지위원회니인권위원회 등을 뒀지만 과연 얼마나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습니까.
박원순= 검찰개혁은 전체적으로는 각종 제도와 작동 풍토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검찰의 검사윤리가수백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막연히 “잘해보자”는 식으로는 안됩니다.
강병태= 검찰 인사가 너무 자주 이루어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수시인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에요. 검사가인사에 항상 신경써야 하므로 단기간의 인사와 보직 걱정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본연의 임무보다 다른곳에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권력에 줄을 대려고 하지요.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인사 등 기본부터 바꿔야 합니다.
정성진= 일단 당장은 신임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조직을 추스려 국민신뢰를 회복하기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인사권자와 국민들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국가사회의 법치주의 확립에 도움이 되도록 냉철하게 검찰을 채찍질 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 참석자
정성진(鄭城鎭) 국민대 총장▦경북 영천(62)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변호사▦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
박원순(朴元淳) 참여연대사무처장 ▦경남 창녕(46) ▦대구지검 검사 ▦변호사▦대한변협 법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인권재단 인사 ▦방송위원회 법률자문특별위원회 위원
김진각기자
kimjg@hk.co.kr
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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