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朴鍾哲)씨의 15주기를 맞은14일 오후. 서울대 인문대 건물을 등진 채 외롭게 서 있는 박씨의 추모비 앞에서는 재학생과 박씨의 동창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추모행사가 열렸다.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에도 매년 빠짐없이 치러온 행사지만, 올해는 박씨가 고문으로 숨진 당일 경찰이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화장을 시도했다(한국일보14일자 31면 보도)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탓인 지 참석자들의 표정은 더욱 침통해 보였다.
올해도 흉상으로 남아 있는 아들의 모습이 못내 그리워 캠퍼스를 찾은 아버지 박정기(朴正基ㆍ72)씨는 분노를 애써 감추려 했지만 말라버린 눈물 샘에는 또 물기가 고였다.
그 시각, 추모행사 소식을 전해들은 경찰청의 한 간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답답하고 막막해요. 경찰은 그 때처럼 똑 같은 은폐조작에 휘말려 있으니…."
그의 말 처럼 15년 전의 경찰과 현재의 경찰은 빼 닮았다.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더라'는 박씨의 고문치사사건으로 치안본부장과 대공수사 관련 간부들이 줄줄이 철창으로 향했고, 공권력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번하고도 반이 바뀐 요즘, 국정원의 '수지 김 간첩조작'에 경찰이 공모ㆍ동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 총수가 또 구속되고 환골탈태하겠다는 경찰의 구호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동안의 경찰의 변신 노력을 모두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준과 위상을 높이려는 경찰의 노력은 상당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인권과 직결된 정치색 짙은 사건에서는 헛발질을 연발하는 까닭은 뭘까. 지난 세월은 경찰에게 '잃어버린 15년'이다.
경찰은 이제 세월을 또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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