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말기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가 불과 몇 달 전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도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검진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건강 검진이 건강면죄부인 양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무조건 맹신하다가는 자칫 건강의 적신호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질병의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해 건강 검진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다.
■맞춤형 건강검진을
일부 종합병원의 경우에는 이 달 말까지 예약이 밀린 상태다.
작년 한 해 건강 검진으로 14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한 대형병원에서 가장 많이 팔린 건강 검진 상품의 가격은 92만 원, 심지어 120여 개 항목을 검사하는 203만 원짜리 상품도 나왔다.
그런데 이 같은 고가의 패키지형 건강 검진 상품이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면 건강 검진을 실속 있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전문의들은 “실속 있는 건강 검진이 되기 위해서는 ‘투망식종합 검진’보다는 필요한 검사만 가려 받는 ‘맞춤형 건강 검진’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건강 검진은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건강 증진을 위해 받는 것인 만큼 무조건 검사 종류만 늘리는 것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전문의에게 자신의 건강상태를 충분히 설명해 꼭 필요한 검사만 선택해 검진을 받는 지혜가 필요하지요.”(서울중앙병원 가정의학과 전성훈 교수)
“건강 검진시 X선 검사를 통해 폐결핵이나 유방암이 의심된다고 통보를 받은 사람 중 90%가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 검사기관이 실적 위주의 통보에 치중하고 의료사고에 대비해 정상범위에 드는 피검자도 ‘양성’으로 분류하기 때문이지요.”(A병원 진단방사선과 K교수)
■기본 검사 10만~20만원이면 충분
처음 건강 검진을 받는 사람은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혈액 및 대ㆍ소변 검사, 가슴 X선 촬영, 혈압 측정, 심전도 검사 같은 기본 검사는 반드시 받는 게 좋다.
이 같은 기본 검사를 하면 성인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에게는 위암과 자궁 경부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위 내시경과 질(膣) 세포진 검사도 해야 한다.
위 내시경 검사는 식도, 위, 십이지장을 검사해 장기의 운동변화, 염증, 궤양 등을 진단한다.
최근에는 실제 병소(病所)보다 4~5배 확대해 볼수 있는 전자 내시경까지 등장해 초기 위암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연령에 관계없이 질세포진 검사를 적어도 3년에한 번 정도는 받는 게 좋다.
이 같은 기본적인 검사들은 비싼 비용이 드는 대형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동네병원 등에서 10만~20만 원 대로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건강 검진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년이나 1년마다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기초, 구강, 가슴X선, 혈액, 소변, 심전도 등 6개 항목에서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굳이 120여 개 항목에 이르는 대형 종합병원의 200만 원 대 패키지 건강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 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항목의 표준화된 건강 검진을 실시했던 미국도 이제는 수검자의 특성에 맞는 검사를 하고 있다.
세란병원 종합검진센터 장일태 진료부원장은 “시간과 비용 문제로 건강 검진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며 “40대부터 정기적으로 기본 건강 검진을 받으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년 되풀이해서 받을 필요 없어
종합 건강 검진을 받은 사람은 매년 되풀이해서 받을 필요는 없다.
병력과 건강상태,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선별적으로 추가 검진을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쉽게 피로를 느끼고 이유없이 체중이 감소하거나 신체의 어느 한 부위가 계속 아플 경우, 뒷목이 뻐근하고 가슴의 통증을 느낄 때, 계단을 오를 때 쉽게 숨이 차는 경우, 갈증이 심하고 소변을 자주 볼 때, 계절과 관계없이 감기에 자주 걸리 때에는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간염 환자,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비만환자 등은 간암 및 간경변이 우려되므로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또 당뇨병 환자는 당뇨 망막증으로 실명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망막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혈압과 흡연, 고지혈증 등 심장병 위험 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심전도 검사를, 운동 후 가슴에 통증을 느낀경험이 있다면 뛰면서 심전도를 측정하는 운동 부하 검사를 받도록 한다.
50세 이상인 경우에는 대장암 검진을 위해 대장 조영술이나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
항문으로 조영제와 내시경이 들어간다는 점이 부담이 되지만 최근 대장암이 급증하고 있어 40세 이후에 한 번은 받는 게 좋다.
항문 출혈과 변의 굵기가 줄어들어도 대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평소에 튼튼했던 사람이 갑자기 살이 빠지고 피곤함을 느껴 병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 당뇨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은 혈당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비싼 검진보다는 정기 검진을
값비싼 건강 검진을 받아야 병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불필요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고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프렌닥터내과 남재현 원장은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확인해 보기전에 이런 검사를 하는 것은 낭비일 뿐 아니라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암 세포의 크기가 1㎝도 안 되는 초기에는 컴퓨터촬영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조경환 교수도 “값비싼 건강 검진을 가끔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게 더 낫다”고 충고했다.
폐암이나 난소암 등 발병 속도가 빠르고 찾아내기 힘든 특정 질환은 종합 검진만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폐암의경우 진행 속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건강 검진을 받더라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병ㆍ의원은 현실적으로 발생자체가 드물고 조기 발견 효과마저 검증되지 않은 난소암이나 뇌종양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CT나 MRI 같은 고가의 검사를 권유하고, 유방암 확진을 받은 후에나 필요한 특수검사를 기본 검진에 포함시키는 곳도 있다.
암 검사를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B대학병원 암 전문의 L교수는 “일부 암 검사의 경우 과다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대장암 여부를 확인하는 CEA(암지표물질)검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CEA 검사에서는 암이 없어도 흡연자의 33%가 기준치 이상의 수치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전문의는 “대형 종합병원들이 수익을 올리기위해 앞다투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싼 건강 검진 상품을 내놓고 있다”며“이런 종합 선물세트식 상품보다는 국민건강을 위한 건강 검진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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