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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강남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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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강남 탈출기

입력
2002.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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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주택가의 한 맥주집 여주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S아파트에서는 권력 자랑하지 말고, M아파트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고, U아파트에서는 학력 자랑하지 말고, C아파트에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여주인이 말하는 곳이 요새 한창 부동산값이 술렁대서 나라를 긴장시키는 대치동 일대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교육열과 재력은 근처 은행 외환송금창구에 가보면 실감이 난다.

■필자는 20년전 강남 개포동에서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 장화를 신어야 할 정도로 진흙탕이 질척거렸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을 때 "개포동"이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말죽거리 지나서"라고 이야기하면 알아들었다.

버스를 타면 한없이 돌다가 광화문 근처에 도달했다. 오래 살 곳이 못 돼 여유만 생기면 탈출하리라 생각했다.

단지 한가지 좋은 점은 봄에 구룡산에 오르면 인적대신 층계 논에 개구리가 첨벙거리고 뻐꾸기가 우는 자연환경이었다.

■이렇게 해서 개포동과 대치동을 맴돌다가 그만 강남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 봄 같은 아파트에 사는 후배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대화를 나누다가 "중ㆍ고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입시는 다 끝났다"는 대답에 그는 "그러면 왜 여기 삽니까. 이사하시지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달후 할 수없이 강북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주인이 이미 낸 전세금에 매달 100만원을 더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강남의 변화에서 우리나라의 물질적 성장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강남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행태는 한국사회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능시험 난이도에 따라 부동산이 춤을 춘다. 돈 앞에 도시계획의 원칙도 허물어지고 만다.

70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면 40층짜리 건물이 항의를 한다. 그러나 더 무서운 일은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성적순 아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움직여 나갈 것이란 점이다.

김수종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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