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도 유행이 있다. 푸코가 그렇더니 요즘은 들뢰즈를 모르면 지적인 대화에 낄 수 없는 분위기이다.대형서점에 가보면 하드커버로 된 그의 두꺼운 책들이 곧잘 나가는 모양이다.
반면에 내가 20대에 탐독했던 책들은 어디박혀있는지 찾아보기도 어렵고, 인터넷 서점을 뒤져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반성완 역ㆍ한길사 발행)도 이런 책들에 속한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83년 무렵이었다.
현실에 대한 냉소와 예술에 대한 낭만적 열정 속에서 미술대학을 다녔던 나는, 당시 사회를 지배한 정치ㆍ사회적 현상들에 내가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이를 부끄러워하면서 이것저것 사회과학 서적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그런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20세기 서구 역사를 관통하는 대규모 군중과 파시즘 권력의 출현에 대한 지식 이상의 것이었다.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창적인 사유 방식,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부과한 고도의 지적ㆍ도덕적 태도는 내게 깊이 각인되었고 그 후 나의 미술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방대한 자료와 정교한 분석을 토대로 한 사회학적, 정치학적, 인류학적 연구서인이 책의 다른 한 축은, 예를 들면 '깃발은 보여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바람'이라든가, '화살은 손가락과 새의 결합'이라는 등의 탁월한 문학적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일체의 개념적 체계와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일상생활의 구체적 사실을 세밀히 관찰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그의 작업방식은, 개념적 사고와 형태적 사고, 인식과 감성이 이상적으로 결합되는 사유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이 나의 미술과 글쓰기의 모델이 되고 있다.
과작의 작가인 카네티는 이 책을 쓰는 데 무려 20년을 바쳤고 그것이 100년 뒤에도 읽혀질 것을 기대했다고 한다.
나는 그럴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당대의 유행에 좌우되는 우리의 독서 풍토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안규철 조각가ㆍ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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