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자위대의 본격 해외파병이 실현됨으로써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이러한 시점에서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재무장은 당초부터 미국의 종용에 따른 것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는 최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행한 논문집 ‘한국전쟁사의 새로운 연구’에 기고한 ‘미국의 일본 재무장 정책’에서 “한국전쟁기간에 급속히 진전된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 강요됐으며, 일본 정부의 판단에 의해 거부되거나 부분 수용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불안해진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미국의 기본 입장은 일본에 적어도 10개 사단(30만 명) 이상 규모의 무장체제를 구축하고, 아시아 지역동맹체제에 일본을 가입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참전까지 고려할 정도로 일본의 전투력을 활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은 이를 거부했다.
요시다 총리는 ‘미국의 과도한 중무장 압력에 대항하면서 최소한의 경무장 노선을 관철시켰다’(‘요시다 독트린’)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점령국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53년 7월에는 일본 보안청과 해안경비대 병력이 18만 명에 이를 정도로 재무장이 진행됐다.
특히 한국전쟁에 비전투원 3,000~4,000명을 파견했으며, 많은 일본 선박이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앞서 극비리에 어뢰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한편 남기정 일본 도호쿠(東北)대 법학과 교수는 ‘일본의 재군비와 기지국가론’이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과 요시다 내각의 대립 끝에 요시다의 현실노선‘(단순히 미군에게 군사기지만을 제공하는 ‘기지국가 노선’)으로 매듭지어졌다”며 “당시 다수 일본 국민은 재무장을 원했지만 보수 우익과 군벌의 행태에 의심을 품었기때문에 요시다를 지지했고, 이것이 전후 재무장에 대한 내부 억제력으로 작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재무장은 이처럼 역사적 배경이 있고 일본으로서도 할 말이 있다.
작금의 자위대 해외파병도 미국의 요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의구심 속에서 앞으로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된다.
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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