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중인 코미디언 이주일(62)씨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무척 망설였다.“라이트 윙을 맡았던 춘천고 축구선수 시절에는 내 실력이 종환이(박종환 전 대표팀 감독)보다 나았다”고 말하는 이 ‘국민배우’는 축구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축구광.
지난 해 10월 병원에서 “주변정리를 하라”는 선고를 받자 박종환 감독에게 전화해 “야, 월드컵도 못보고 갈 것 같구나. 그게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아”라고 울먹였다고 한다.
“이 싸움에서 이겨 암환자들에게 용기도 주고, 우리가 16강에 오르도록 응원도 해야지”라고 말문을 연 그의 목소리는 축구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힘이 있었다.
“월드컵은 장난이 아니야. 솔직히 우리가 16강에 올라갈 실력에는 모자라지 않아? 그러나 온 나라와 국민이 단합해 하나가 되면 될 수도 있다고 봐.
특히 언론과 팬들이 도와야 해. 한두번 졌다고 죽일 듯이 몰아 붙이거나 1.5진을 데려다가 간신히 이긴 평가전을 놓고 16강은 따놓은 것처럼 흥분하는것은 못마땅해.”
16강의 중요성에 대한 논리도 똑 떨어진다.
“생각해 봐요. 안방에서 탈락하면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일할 맘이 나겠어. ‘우리는 안돼’라는 자포자기에 사업이고 경제고 엉망이 되고, 정치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더 싸움질이나 하고…. 아이구, 생각하기도 싫다. 범죄가 늘고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는 사람도 급증할 걸. 월드컵은 국운이 걸린 이벤트야. 젖 먹던 힘까지 내야 해. 나라가 희망을 잃으면 안되지.”
그의 말대로 우린 단합해 16강을 이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또 다른 면도 생각해야 한다. 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 골키퍼였던 한국축구사의 산 증인 홍덕영(76)씨의 말은 보다 신중하고 함축적이다.
“월드컵에는 사자만 있지 (만만한) 고양이는 없소. 낙관도 비관도 말고 최선을 다할 밖에.” 그러면서 한국축구의 앞날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축구는 계속되는 거야. 우리 초중고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 있어요?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을 어린 선수들이쓸 수 있게 하고, 지금부터라도 축구발전 장기계획을 세워 실행해야 해. 당장 성적에만 집착하지 말고.”
유엔 회원국수(198개)보다 많은 205개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중 32개국이 정선돼 벌이는 축제. 16강을 기원하면서 이제 축제의 주관자로서 ‘또 다른 승리’에도 조금씩 눈을 돌리자. 지구촌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고, 한국인의 저력과 한국문화의 멋, 패자와 꼴찌에게도 갈채를 보내는 성숙함도 보여주자. /김기만 청와대 공보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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