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51) MBC 보도본부장.그에게 앵커는 숙명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인가, 그에 대한 기대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지 때문인가.
그가 뉴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상관없이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KBS와의 저녁 종합뉴스 시청률 경쟁에서 큰 격차로 계속 밀리며 위기 의식을 느껴 오던 MBC가 새해부터 보도국 사령탑인 그를 다시 앵커석에 앉혔다.
5년 2개월 만의 복귀이다. MBC는 새 앵커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12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시청자, 전문가, 보도국 간부 등 세 그룹의 평가를 받았다.
보도본부장이 앵커를 맡은 것은 90년대 초 KBS의 박성범 앵커 이후 처음이다. MBC는 엄기영씨가 뉴스를 진행하면서 시청률이 다소 오른 것에 대해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희끗희끗해진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관록일까, 연륜일까? 보도국 정치부장, 보도제작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 관리자로서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앵커를 다시 맡고서 며칠 새 더 센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일부러 염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염색 좀 하라’는 e메일도 옵니다. 엄기영도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 라는 말도 있더군요.”
1%의 시청률이 아쉬운 판에 시청자로부터 반응이 있다는 건 우선 긍정적일 것이다.
“이전의 엄기영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반겨줍니다. 파리 특파원(1985~88년) 때나 뉴스를 진행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죠.”
센 강변, 몽마르트르, 에펠탑을 뒤로 한 채 바바리(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파리에서 MBC뉴스 엄기영입니다’라고 말하던 모습을 시청자들은 기억한다.
파리라는 도시가 낭만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듯 엄기영도 뉴스와는 상관없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그렇게 서 있었다.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에 갇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사고를 전할 때조차도 시청자들은 앵커 엄기영으로부터 파리의 잔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엄기영은 쑥스러워서도 낭만의 티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파리에서 돌아왔을 때 ‘고엽’같은 샹송을 부르기도 했지만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트로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주얼과 함께 뉴스를 전달하는 방송기자로서 바바리는 소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여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문물, 생활의 경험을 보다 맛깔스럽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다 평소 즐겨입던 바바리를 활용했습니다.”
주객이 전도됐다. 시청자들은 그가 파리에서 어떤 뉴스를 전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바바리를 입은 모습만큼은 선명하게 떠올린다.
앵커 교체를 앞두고 MBC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피의 수혈을 원했다. 하지만 시청자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엄기영이 선택됐다.
40~50대의 선호도가 특히 높았다. 이렇다할 스타앵커는 모두 뉴스를 떠난 마당에 “다시 앵커를 맡는 비극적인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고 하지만 시청자 평가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지도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텐데.
“글쎄요. 시청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남이 써 준대로 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신뢰감이나 ‘순박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는 여성팬이 많다. “여성들이요?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군요”라며 웃는다.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 덕분에 엄기영은 언론인 이상의 스타가 됐다. 그가 ‘얼토당토 않았다’고 전제한 백지연씨와의 스캔들 소문도 그가 단순한 기자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시청자의 호감이 그대로 자신의 앵커적 자질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믿는다.
오후 5시가 되면 면도하고 분장을 시작하고, 6시에는 함께 진행하는 김주하 앵커와 담당PD와 구내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6시 30분부터 방송 시작 10분 전까지 뉴스원고를 작성하는 일상은 6년 전과 같지만, 앵커로서 뉴스를 전달하기만 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곧 엄기영에 대한 비판이다. 그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으로서 뉴스를 장악하고 있을 때 MBC 뉴스가 추락한 것을 시청자들은 잘 안다.
기대를 해 볼 수는 있다. 보도 책임자가 앵커의 자리에 앉았으니, 미국처럼 앵커 개인의 특성에 의해 뉴스의 색깔이 달라지는 방향으로 방송저널리즘이 변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다.
보도본부장으로서 “뉴스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정도의 포부로는 MBC뉴스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에 부족할 것이다.
“심층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생활밀착형 뉴스를 전달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이 뉴스가 사회를 통합해주는 따뜻한 매체이길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조로 현상을 보입니다. 취재경험이 풍부한 기자들을 전면에 내세울 예정입니다.”
스타 앵커다 싶으면 방송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박성범 정동영 등의 남자 앵커는 정계로, 백지연이나 황현정 등 여자 앵커는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뉴스가 숙명이어야 할 앵커들이 뉴스에 대한 주인의식을 지닐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MBC로서 ‘엄기영 선택’은 고육지책이자 희망이다. 여의도 MBC 사옥 외벽에는 엄기영의 사진을 배경으로 ‘MBC 뉴스, 그 신화는 계속됩니다’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신화창조’가 억지로 되는 일일까 싶지만 말이다.
■엄기영 효과 일단은 긍정적
시청자의 3%가 돌아왔다. 엄기영 앵커가 복귀한 1일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16.6%로 KBS ‘뉴스9’에 1% 포인트 차로 따라붙었다.
2일 15.7%, 3일 15.7%, 4일 12.7%, 7일에는 16.0%, 그리고 8일에는 14.4%였다.
지난해 12월 ‘뉴스데스크’ 평균시청률은 12.0%. 엄기영 앵커가 시청률 3%를 움직인 셈이다.
그가 물러났던 6년 전에는 4%를 움직였다. 1996년 11월 그가 앵커석을 떠나기 직전 5일 동안 평균시청률은 22.7%였으나 이인용 앵커로 교체 직후에는 18.6%로 떨어졌다.
일단 ‘엄기영 효과’는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단기적으로 끝날 것인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인지가 미지수다.
앵커의 파워를 보여준 경우를 엄기영 앵커 이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앵커의 뉴스 장악력이 큰 미국과는 다른 우리의 뉴스환경에서 아직까지 ‘앵커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김현주 교수는 “앵커가 뉴스의 가치와 시각을 결정하는 미국에서 앵커는 뉴스 시청률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 하지만 뉴스를 정리, 전달하는 우리의 시스템에서는 앵커가 누구냐에 따라 시청률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3%는 무엇일까. 엄기영에 대한 향수와 이미지를 간직한 이들이 만들어낸, 정말 특수(特殊)한 ‘엄기영 특수(特需)’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이름값은 확인한 셈이다.
●약력
1951년 강원 춘천출생
197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74년 MBC입사
1985~1988년 파리특파원
1989~1996년 뉴스데스크 앵커
1996~1998년 보도국 부국장 겸 정치부장
1998~1999년 보도제작국장
1999~2000년 보도국장
2000.3~ 보도본부장
2002.1~ 뉴스데스크 앵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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