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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삼일마다 作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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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삼일마다 作心"

입력
2002.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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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해는 늘상 새 수첩 뒤편에 친지들의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가족들의 생일위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는데, 올해는 새해가 시작되고도 닷새가 지나서야 비로소 2002년 수첩을 꺼내들었다.새해 벽두부터 마감에 쫓기는 일이기다리고 있던 덕분이었다.

마감시간을 'dead line'이라 부르는 영어 표현의 절묘함에 감탄하면서, 아마도 마감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끝낼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의 흐름일랑은 늘같은 속도로 지나갈텐데 굳이 새해가 되었다하여 마음가짐이 특별해지는 것은, 그 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관성 속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보는 가상한 노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는 작년이 맘 때의 다짐이 궁금하여 헌수첩의 첫 장을 펴 보았다.

새해 다짐으로 1. 해야 할 일을 반드시 메모할 것. 2. e메일은 받는 즉시 답장할 것. 3. 친구들 목소리 잊지 않을 만큼 전화(라도) 할것.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별 것아닌 내용을 다짐이랍시고 적어놓은 것이 우습기도 하면서,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다짐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첫 번째, 메모를 습관화하자는 다짐은 오늘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의지를 내심 소박하게 표현한 것이었는데, 작년에 마련했던 메모장은 드문드문 생각날때마다 할 일을 모아 적어 둔덕분에 절반도 못채운 상태로 남아있다.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메모습관이 제대로 안지켜진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해야할 일의목록이 스스로 감당할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 과부하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던데 일차적원인이 있었던 것같다.

다음은 계획했던 일이 일단 마무리되면 메모 앞에 붙인 일련번호 위에 동그라미를 치곤 했는데, 동그라미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메모장을 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하다.

한데 더욱 결정적인 이유는 메모를 해 두었다는 사실을 잊는 경우가 종종 있어 메모를 안 해두느니만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다짐은 사이버 공간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의사소통 양식에 보다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는데, 이또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용건만 간단히 메일'을 썩좋아하지 않는다.

e메일 사용초기에는 모니터에 뜬 활자가 곧 사라져버릴 것 같아 즉시 프린트를 하던 아날로그 세대로서는, 온 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정감 어린사연 나누기를 즐기는 탓에, 메일이 오면 하루 이틀은 묵히면서 어떤 답장을 써줄까 고민하곤 한다.

그러노라면 누구에게 답장을 써 주려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당시의 감흥도 엷어지는 데다, 장문의 사연은 커녕 간단한 답장조차 못해주고 마는 게으름을 보일 때가 많았던것 같다.

세 번째 다짐도 부끄럽기 짝이없는 것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압도되어 보고싶은 친구들과의 만남은 우선 순위에서 계속 밀려나, 이제는 친구들로부터 왕따의 위협까지 받을 지경이 되었다.

지난해를 곰곰 반추하며 새해 수첩에 다시 작년의 다짐을 적자니 이미 마감일(dead line) 지난 과제물을 제출하는 기분이 되어 개운치가 않다.

하기야 우리가 언제 계획이 부실하여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적 있었던가. 남 보기에 그럴듯한, 포장만 화려한 소망보다는 일상 속에서 실천가능한, 구체적 계획을 다져보는 것이 더욱 현명하리라.

해서, 올해는 작년의 미진함을 거울삼아 세 가지 약속을 필히 실천해야지 다짐해보는데, 마음한 구석으로는 십중팔구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치고 말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고시절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작심삼일을 삼일에 한번씩 하면" 되지 않을까?

함인희ㆍ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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