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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디아더스'…집안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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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디아더스'…집안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입력
2002.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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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이가 밤마다 누군가가 보인다며 이름까지 들먹인다면, 부모는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아이가 나쁜 꿈을 꾸었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부모는 혹시 아이가 무슨 이상한 귀신에 씌운 것이 아닐까 전율한다.

이때 공포는 엄밀히 말해 귀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염려다.

그 상대가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상상의 메커니즘을 발동해 스스로 공포 속으로 빠져든다.

결국 공포란 보이지 않는 타자로부터 위협당하는 우리의 안위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할리우드가 제3문화권에서 수혈받은 감독 중 가장 영양가 높은 사람은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아네마바르 감독일 것이다.

그가 ‘히치콕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이승’과 ‘저승’의 관계에 관한 매력적인 공포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를 내놓았다.

영화의 배경은 1945년 대서양의 영국령 채널 제도의 저지섬. 늘 안개에 휩싸여 있는 이 섬의 대저택에살고 있는 전쟁 미망인과 두 아이.

보름 전 갑자기 하인들이 사라진 이 집에 전에 일한 적이 있다는 밀즈 부인(피오눌라 플래네건) 등 하인 세명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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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그러나 이들이 들어오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귀신을 보는 횟수가 많아지고, 집안의 규칙이 깨지기 시작한다.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은 어떻게 살아 돌아왔고, 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떠난 것일까.

두런두런한 말소리, 닫으면 다시 열려있는 피아노는 또 무엇일까. 대체 보이지 않는 ‘그들’은 누구인가.

저택 여주인 그레이스 역의 니컬 키드먼은 ‘가스등’이나 ‘다이얼 M을 돌려라’의 고혹적인 여주인공들처럼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신경쇠약 직전의 초조함에 눌려 있다.

감독은 히치콕 스타일의 잦은 클로즈업과 바스트 샷(가슴 위까지만 보여주는) 으로 관객이 ‘공포의 실체’를 쫓는 데 동참하게 한다.

두 아이는 햇볕을 보면 물집이 돋고 사망하는 햇볕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어 아이들의 방안에는 단한 점의 빛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환경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듯, 그레이스는 아이들에게 성서 그대로의 성서를 강요한다.

여기에 ‘필립이라는 아이와 무서운 할머니를 보았다’는 딸 앤과 그레이스의 사이는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다.

앤과 그레이스의 갈등은 공포의 또 다른 양태이다. 귀신에 대한, 성서해석에 대한 앤과 그레이스의갈등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갈등이자 소통할 수 없는 타자(他者)와의 균열을 의미한다.

결국 공포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이자 동시에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 단절이라는 의미이다. ‘디 아더스’는 결국 먼 길을 돌아 ‘죽음’과 ‘타자’에 대해 이해하는 그레이스의 심리적 여정을 그렸다.

그러나 이런 영화는 결말을 알고 보면 본전 생각나기 십상이다. 때문에 배급사는 시사회 관객에게 ‘결말을 소문내지 않는다’는 각서를 장난처럼 받기도했다.

보는 즐거움을 위해 영화의 결말 부분은 비밀. 그래도 아쉽다면 힌트 하나. 감독은 이승과 저승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새로 짜는 것으로 ‘식스 센스’와는 다른 공포 영화를 만들었다.

이승 사람의 눈에는 저승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저승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가정으로 본다면 영화를 보면서 퍼즐을 푸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전체 관람가. 11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떼시스’ ‘오픈유어 아이즈’ 단 두 편으로 한국에도 적잖은 마니아 팬을 가진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30)가 8일 방한해 기자회견을 갖고 밤에는 대한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가한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감독은 “모든 영화를 처음에는 코미디로 구상한다”고 농담을 한 뒤 “나의 영화는 호러(공포)라기보다는 서스펜스나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말했다.

인간의 의식 속에 숨은 강박증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스릴러를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특이한 설정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줄거리 전개에 속아 들어가게 하는효과를 노린 것이며 관계의 단절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독특한 스릴러의 매력 비결에 대해서는 “다른 공포 영화와는 달리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든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관객과의 대화는 뜨거웠다. 감독은 반전에 대한 충격에 사로잡힌 관객에게 “반전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관객이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경험하고 발견해나가는 엄청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니컬 키드먼은 비비안 리의 에너지와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고전적 이미지에 적합한 배우다. 영화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면서도 작품이 키드먼의 연기에 절대로 압도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관객과의 대화에 동참한, 공포영화 ‘하얀방’에 출연 중인 배우 이은주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믿는가”라고 묻자 “니콜라스(극중 니컬 키드먼의 아들)와 같은 성격이 내게도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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