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미국 유학시절 뉴욕 서쪽 롱아일랜드에 있는 친척 아주머니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초등학교 3학년이던 그 집 막내아들이 지역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각종 광고전단(傳單)을 신문지 사이에 끼워 넣고 있었다.아주머니는 "아이 스스로 계속 해보겠다고 해서 그냥 두고 있다"고 했다.
이민세대 중에서는 비교적 성공한 넉넉한 집인데도 아이가 제 손으로 용돈을 벌어보겠다고 무릎을 꿇은 채 광고전단을 열심히 끼우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작업이 꽤 시간이 걸리고 지루한일 같아 보였다. 내가 "일이 많구나. 좀 도와줄게"라며 바짝 다가서는데 그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하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일을 계속했다.
처음 보는 친척이라 의례적으로 사양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내가 심심해서 그래" 하면서 일을 시작할 자세를 취하니, 그제서야 정면으로 날 바라보면서 "이건 제 일입니다. 제가 끝내야 하는 일이라구요. 그리고 만일 도와 주시면 일을 일찍 끝내기는 하겠지만 하루 일당 1달러 50센트 중 50센트는 제가 드려야 하잖아요"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또 아무리 미국이 계산적인 사회라고 해도 어른의 호의를 무시하면서까지 어린애가 모든 걸 돈으로 따지는 게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순수한 내 의사가 정확히 전달이 안됐나 해서 "내게 돈을 줄 필요는 없단다. 그냥 도와주고 싶은데…"라면서 한번 더 설득했다.
아이는 내 순수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이번에는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얘기했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자기 뜻을 알아달라는 확고한 말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데 남에게 도움을 받고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광고전단 한 장 끼워보지도 못한 채 민망한 표정을 감추면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 자그마한 사건은 이후 내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때 일이 항상 떠오르곤 한다.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투명성,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 스스로 하겠다는 독립심이 부러웠다.
이유가 없는 호의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키는 선진국가의 풍토와 공짜와 뇌물이 판치는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방식도 우리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박광서 참여불교 재가연 대상임대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