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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돌아온 강우석…'살아있는 감독'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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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돌아온 강우석…'살아있는 감독' 보여주겠다

입력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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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 ‘1인자’로서 강우석(42)을 만나는 일은 즐겁지 않다.그가 지금 어떻고,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알리는 일 또한 또 다른 ‘권력 과시’가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이다.

해마다 영화 잡지들이 앞 다퉈 그를 ‘최강자’로 추켜세우는 것도 사실은 그 서열을 매기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진짜 속마음이야 어떻든 강우석도 “그런 자리는 싫다”고 했다.

그 자체가 권력자의 여유나 오만일 수도 있다. 본의든 아니든 천하의 내로라는 제작자, 감독조차 그 앞에 서야하니까.

한국영화계 전반을 장악한 ‘넘버 1’ 강우석이 할 일이라곤 이제 별로 없다.

3월에 착공할 경기 파주에 설립할 스튜디오 ‘아트서비스’는 3월에 착공하고, 극장사업도 호주와 합작으로 추진중이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 30억원을 투자했다. “세계화와 수출 전략”이며 “영화로 번 돈, 영화에 다 쓴다”는 신념의 실천이라고 했다. 이제는 그럴 만큼 여유롭다.

거침없는 그의 질주와 자신감. 물론 ‘돈’의 힘이다.

4년 동안 제작자, 투자자, 배급자로 정신없이 뛰었다. 돈의 가치도 알았지만, 돈 앞의 인간을 통해 돈의 ‘독’도 배웠다.

“돈 속에 사람을 집어넣어 보니 그 독이 묻어 나오더라. ‘돈’이 ‘공공의 적’을 만든다.”

어쩌면 영화 ‘공공(公共)의 적’은 그 앞에 비굴하고, 양심조차 팽개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인지도 모른다.

그가 처음부터 “돈 벌어줄 감독 많다. 그래서 정말 이번에는 아직 살아있는 감독 강우석을 보여주겠다”고 외쳤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경제적 절박함에서 벗어났기에 사람들은 더욱 그가 감독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돌아와서는 “3년 반이란 세월을 더 산 강우석, 그 자체를 찾았다”고 자신있게 외쳤다. ‘1인자’로 강우석은 딱딱하다. 그러나 감독으로 강우석은 열심히 자기 생각을 말한다.

어린 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자유, 인간적, 생산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감독으로서 존재. 강우석에게는 가장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영화에서 남은 마지막 욕망이자 미련일지도 모른다.

“술맛이 다르다. 비즈니스로 마시는 술은 독하다. 그러나 촬영 후 마시는 소주 한잔은 달다.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왜 감독으로 돌아왔는가.

“회사(시네마서비스)를 키우는 재미에 빠지면서 어색하던 ‘사장님’ ‘회장님’이란 호칭도 익숙해지더라. 옷차림이나 행동은 여전히 감독인데. 아내와 어머니조차 ‘감독 안 해요?’ ‘얼마나 벌려고 그짓을 계속하니’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제작비 얘기만 하고 그런 나를 후배 감독들은 영화장사꾼처럼 대하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왜 ‘공공의 적’을 선택했나.

“시나리오에서 과거의 나를 읽을 수 있었다. 느와르지만 그 속에 유머를 읽고는 ‘내 영화’라고 생각했다. 인물과 설정이 재미있는 ‘투캅스’나 ‘마누라 죽이기’와 달리 우울한 소재이기에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색깔의 웃음을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투캅스’때 보다 훨씬 황폐해진 사회. 그 원인이 ‘돈’인 세상을 통쾌하게 꼬집고 싶었다.”

-색깔이 다르다고 했는데?

“사회적 설득력을 위한 웃음이다. 범죄행위를 심각하게 다루거나 흑백논리를 강하게 드러내면 드라마가 차단돼 그만 보고 싶어진다. 조폭들에 대한 강형사의 분노나 부모 살해범인 조규환에 대한 응징에서 보듯 사회성이 강한 드라마 일수록 유머가 있어야 통쾌하다. 유머 없는 사회 이야기는 답답하고, 사회 없는 유머는 격이 떨어진다.”

-감독 복귀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꼭 데스크가 후배 기자들 기사 갖고 잔소리 하다, 오랜만에 자기 기사를 쓰는 심정이랄까. 다행히 4년 동안 비즈니스를 하면서 워낙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조율할 수 있었다. 결국 유머도 인생에서 오는 것 같다.”

-왜 코미디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죽어도 내가 ‘친구’나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할 수는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배우들에게 ‘어떤 아이디어도 내지 말라’고 했다. ‘외치지 않는 웃음, 울부짖지 않는 울음’으로 사회를 보여주려 했다.”

-감독으로서 오늘과 내일은?

“일단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호응해주면 2년에 한번은 시대가 만드는 ‘공공의 적들’을 계속 영화로 만들어 가겠다. 물론 코미디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분위기와 스타일이 달라질 것이다. ”

감독으로 돌아온 강우석. 돈(흥행)으로부터 자유가 오히려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공공의 적' 어떤 영화

경찰. 그는 ‘민중의 지팡이’니, 희생과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사표(辭表)’를 ‘死표’라고 쓸 만큼 무식하고, 폭력적이며 부패해 있다.

서랍에는 볼펜 한 자루 달랑 있다. 돈 받고 지명수배자 풀어주고, 마약조직에서 압수한 마약 빼돌리고, 폭력으로 범인을 조작하기도 한다.

살인범. 증권사의 이사급 펀드매니저이다.

유능하고 깔끔하고 냉철한 젊은이로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한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한 사람이 사과한마디 없는 자신에게 화를 내자 죽여버리고, 곧 200억원을 벌게될 주식에 투자한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살해한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한다.

‘공공의 적’은 이 둘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또라이’와 ‘사이코’가 아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공공의 적’이다. 섬뜩한 느낌의 제목. 요즘 같은 우리 사회에서 그 느낌은 더욱 강하다.

누구도 그‘적’이 될 수 있다는 꺼림칙한 기분. 그러나 강우석감독은 모든 ‘적들’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는다. 그것은 무망하다.

세상은 결국 덜 나쁜 인간이 더 나쁜 인간을 응징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나아 질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

강우석 영화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처음 날카롭게 관객들의 양심을 찔러놓고는, 곧바로 재치있는 웃음과 ‘더 큰적’을 통해 “당신은 아니다”라는 면죄부와 안도감을 준다.

그래서 경찰 비리를 수사하는 감찰관에게 엄 반장(강신일)이 화를 내며 “강력반은 좀 받아먹어도 돼”라고 반박하는 것을 통쾌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고 누구를 ‘골려 주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강철중이 “꼴등에서 두 번째인 나도 안다”고 말하는 패륜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패륜아에 대한 응징을 도덕군자나 청렴한 경찰이 아닌 강철중(설경구)에게 맡김으로써,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설득력을 얻었다.

침울하고 무거운 사회고발을 웃음 속에 녹아 들게 했다.

지금까지 강우석영화가 그렇듯 웃음은 최고의 무기이자, 그가 ‘공공의 적’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찰서의 풍경과 다양한 인물들(조폭, 전과자, 마약 밀거래자)의 반응에서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유머를 만들면서 세태를 살짝 꼬집는 재치는 어쩔 수없이 ‘투캅스’이다.

그러나 ‘공공의 적’은 영리하게도 또 하나의 웃음의 길을 찾아냈고 그것을 멋지게 배열했다.

심각하고, 진지한 사건과 인물들이 가진 웃음. 단순 무식한 경찰과 영악한 범인의 대결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공식을 깨부순 그 웃음이 오히려 메시지를 재미있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 웃음이 없다면 ‘공공의 적’은 ‘투캅스’에 대한 향수로 끝났을 것이다.

강우석으로서는 얻은게 없었을 것이다. 굳이 스릴러란 낯선 장르를 선택할 필요도 없었다.

지식에 대한 위악성을 고도로 계산된 단순한 방식으로 비판하는 것도 역겨웠을 것이다. 이런 힘이 강우석 코미디의 천박하지 않는 상업성이다.

3년 반만에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강우석 굳이 왜 스릴러적 소재를 선택했는지, ‘신라의 달밤’ 을 연출하려다 그만 두었는지 알수 있다.

그도 스스로에 갇히는 것이 두려웠고,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25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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