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대개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주위의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정신과 의사는 사실 입보다는 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실제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도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말을 하기보다는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안히 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환자들 중에는 약간의 어드바이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환자가 마음속깊이 묻어둔 고민이나 생각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것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증상의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항상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은 몇 번 만나면 더 이상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관심사도 아닌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어느 새 딴 생각으로 접어들기 일쑤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사람의 심정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도 남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어왔다.
그 과정 동안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노동자, 경영자, 정치인 할 것 없이 모두 자기의 목소리만 높였다.
그러다보니, 정당과 정당, 회사와 노조, 조직과 조직 간의 협상은 난항을 겪기 일쑤였다.
知彼知己 百戰百勝(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있듯이 남을 알려면 우선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또 내가 말을 들어주어야, 상대방도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다.
그래야만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모두 자기 말만 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남의 말을 들어주는 귀를 가진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준수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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