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10인이 추천하는 10권의 책새 해가 밝았다. 숨차게 달려온 일 년, 다시 힘겹게 헤쳐가야 할 한 해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새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자세를 좋은 책과 함께 가다듬어 보자.
책에는 우리 삶을 이끌어갈 비전과 지혜가 담겨 있다. 평소 늘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계 인사 10명이 추천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소유의 종말(제레미 리프킨지음ㆍ민음사 발행)
인간관계나 문화마저 상업화하고, 성공이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세계화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의 흐름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회비평서다.
리프킨은 인터넷 정보혁명으로 소유보다 접속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접속 개념의 문화자본주의가 인간관계마저 상업화하는 데 우려를 표시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연 어쩔 수 없는 대세인가, 검증 없이 흘러가도 좋은가, 신뢰를 소모하는 자본주의 대신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동체주의는 가능한가.
삶의 미래에 관해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는 책이다.
/구본형
■헬렌니어링의 소박한 밥상(헬렌 니어링 지음ㆍ디자인 하우스 발행)
지금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은 걸 지니거나, 잘 먹어야 된다거나, 문화를 어떻게 향유해야 한다거나 하는 거품 속에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삶이 소박하고 간결한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기쁨과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지 알았다.
우리한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기름지고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사물이나 취하는 음식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런 것들과 진정으로 만나는 데서 얻어야 한다.
헬렌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자연에서 취한 소박한 식탁은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지침이 된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적게 가지는 것이 아름답다.
/ 김혜경
■장자(안동림 역ㆍ현암사 발행)
‘장자’에는 상식적인 사고와 세속적인 가치에 대한 전복이 있다.
당대의 성현을 멋대로 주무르고, 고금의 역사도 희화화하며, 우주의 진리를 하찮은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부자유를 짊어진다. 장자는 인간을 가두는 이 부자유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장자의 철학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갈등과 분노를 가라앉힌다. 인간을 얽매는 기성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때에야 비로소 존재 가치의 기반을 어디에다 두어야하는지 알게 된다.
/신경숙
■신약성서
음악교육학자이기도 했던 작곡가 코다이는 “인간 마음에는 타지 않는 심지가 있다. 교육은 거기게 불을 당기는 것”이라고 했다.
불만 붙여주면 진리나 아름다움, 착함 등을 향해 누구나 스스로 타올라 성장한다는 것이다.
신약성서는 숨어있는 양심에 불을 당기는 책이다. 읽다 보면 겁이 날 정도다.
거짓과 허욕을 깨닫게 하고 이렇게 살아도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위대한 예술이 영혼의 근본을 뒤흔들듯.
다른 이야기들은 지성이나 감성을 자극하지 양심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성경은 기독교 신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강숙
■예수는 없다(오강남 지음ㆍ현암사 발행)
이 책을 읽고 아주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종교, 영성(靈性)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미신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비교종교학이란 학문에 의해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를 안 믿거나 반그리스도적 사람이 아닌데, 과학적ㆍ이성적으로 대단히 깊이 종교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인간이 일차적으로 이성을 갖고 있다면 감성, 영성은 그보다 한 차원씩 더높은 과정이다.
특히 영성은 사람들이 해명하기 힘든 영역이다. 이 책은 한국 학자로서는 아마 최초로 영성의 문제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윤기
■농담(밀란 쿤데라 지음ㆍ민음사발행)
20세기 후반에 나온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쿤데라의 다른 작품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근래 읽은 소설 중 이게 가장 좋았다.
20세기는 근대성ㆍ이데올로기ㆍ윤리적 실험 등이 인간 본성과 충돌한 시기였다.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정치ㆍ사회 현실과 인간 내면의 충돌을 그린 이 작품은 20세기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성적인 출발점을 제시한다.
문학이 빈곤해지고 약해진 시대에 이 소설은 다른 매체가 보여줄 수 없는 문학 고유의 힘을 보여준다.
/이창동
■아름다운 이야기(제임스 헤리엇 지음ㆍ웅진닷컴발행)
동물도 병을 앓는다. 상처를 입고 끙끙 신음한다.
영국의 수의사 제임스 헤리엇은 아픈 동물을 치료하면서 울고 웃는다.
평생을 농장에서 가축을 돌보면서 살아온 수의사의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 그리고 사람 이야기.
수의사는 동물을 치료하고 말 못하는 고통도 헤아려야 한다. 너무 젖이 빨려 젖꼭지가 찢어지는 가 하면, 상상임신을 하거나 자궁이 쏟아진다.
무작정 인간에게 매달려야 하는 동물을 만날 때 뭉클한 감동과 함께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정재승
■드니즈 르네와의 대화(카트린 미이예 지음ㆍ시공사발행)
국내 화상(畵商)들에 대한 평가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그림 매매를 통해 이문을 남기는 장사꾼’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현대추상미술의 전도사’라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초일류 화상 드니즈 르네의 이야기를 통해 화상과, 그들이 일궈낸 미술문화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우리 미술문화가 더욱 풍요롭고 단단해지려면 화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일독할만하다.
지난해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88세의 노(老) 화상을 위한 헌정 전시회를 열었던 그 이유와 배경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최열
■문화가 중요하다(새뮤얼 헌팅턴 등 지음ㆍ김영사 발행)
당대의 석학들이 문화에 대해 논한 이 책은 세계화시대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기위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를 규정해가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화에서 벗어날 수없다. 이 책은 문화가 인류 복지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놓았다.
9.11 이후 문명의 충돌이 운위됐지만 2002년의 화두는 분명 문명의 화해이다. 그 방향을 찾아가는 데 이 책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기호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ㆍ창작과비평사 발행)
지난 세기말 사회주의가 붕괴된뒤 자본주의의 유토피아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적인 석학 월러스틴은 그러나 “마침내 자본주의가 해체의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최근 수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개최한 월러스틴의 강연 모음집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계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포하고 새로운 시스템의 출현을 예언한다.
우리가 알던 세계의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변화와 진보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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