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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문화파워 / 조재현 "과소평가 됐다는말 안듣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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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문화파워 / 조재현 "과소평가 됐다는말 안듣겠지요"

입력
200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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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때가 있다면, 조재현(37)은 분명 그 ‘때’를 만났다.한편에서는 ‘가장 과소평가된 배우’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TV에서는 코믹, 영화에서는 저예산”의 이미지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그는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겠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 편견의 핵심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주 막을 내릴 SBS 수ㆍ목드라마 ‘피아노’와 그 다음날 개봉할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의 주연.

그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지칠 때쯤 크게 한 방을 날렸다. 구랍 ‘2001 SBS 연기대상’에서 남자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 같다.

“영화를 찍고 있을 때 그는 진짜 ‘나쁜 남자’가 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는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예의 바르고, 적당히 버젓한 조재현이 된다. 나는 그게 싫다.”

김기덕 감독은 “조재현에게 불만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누군가는 조재현과 김기덕을‘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했다. 그의 대답은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아주 교묘히 포장된 칭찬이다.

현장에서의 배우와 일상에서의 조재현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없는 코믹 탤런트로 보이다가 어느새 그는 잊을 수 없는 눈빛의 배우로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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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쁜 남자

얼마 전 한 영화잡지 설문에서 김기덕 감독은 ‘가장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조재현은 ‘가장 과소평가된 배우’로 꼽혔다.

그러나 조재현이 ‘과소평가’ 됐다는 근거로 들 수 있는 영화는 대부분 김기덕의 영화이었다.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섬’ 을 거쳐 ‘수취인불명’에서 조재현은 나날이 눈빛이 ‘날것’으로 되어 갔다.

그리고 ‘나쁜 남자’에서 그는 진짜 ‘나쁜 놈’이 됐다.

조재현은 그러니까, 김기덕 영화의 악취를 자양분으로 강(强)산성의 눈빛을 가진 배우가 되어 간 셈이다.

‘나쁜남자’에서 조재현의 대사는 “깡패새끼가 무슨 사랑이냐”는 단 한 구절. 지독한 남자의 연기를 표정과 눈빛으로 다 했다.

비로소 그의 무게와 감독의 무게가 적당한 긴장감 속에 수평을 이룬다.

“더 이상 과거 식으로는 안 된다. ‘나쁜 남자’는 우리가 새롭게 만나는 첫 영화다. 나는 당신에게서, 당신은 나에게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자.”

조재현은 시나리오를 단 한 번 읽은 뒤 새로 읽지 않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여자가 몸을 파는 장면을 보고 한기가 고개를 떨군다’ 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안 했어요. 한기라는 인물은 지상에서 30m쯤 떠 있는 인물일 겁니다. 창녀에게서 사탕을 얻어 먹고, 동정을 바치고, 그래서 창녀는 그에게 어머니이자 누이이자 착취의 대상이 되는 그런 존재였겠죠.”

조재현에게 영화는 끊지 못하는 주식투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선물로 지난해 ‘수취인불명’으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했고, 올 2월에는 ‘나쁜 남자’의 주연자격으로 베를린 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에게 대중스타로서의 큰 기쁨을 안겨 준 것은 가끔 재미 삼아 산 복권과도 같은 드라마 출연이었다.

조재현이 ‘피아노’에 출연한다고 하자, 김기덕 감독은 물론 ‘나쁜 남자’의 제작자까지 모두말렸다.

“영화만 한다더니?” 아마 “TV 나가면 또 망신만 산다”는 뒷말을 묻어 두었을 것이다.

‘해피 투게더’ ‘줄리엣의남자’ 등에서 오종록 PD와 그의 인연은 배우 조재현에게는 그다지 득이 되지 못했다.

TV 속 그는 코믹 이미지만이 뒤범벅이 되었다. TV란 언제나 ‘배우’를 우습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 PD는 “진지한 역할이나 가벼운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몇 안 되는 연기자”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제대로 안타를 쳤다.

“배역을 듣자마자 오 PD에게 하겠다고 했어요. 처음엔 김영철씨에게 배역이 맡겨질 예정이었다는데. 암튼 이거다 싶은 느낌이었죠.”

그는 연기에 몰입하려고 평소에는 친구처럼 지내는 상대역 조민수와 촬영 내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긴장을 유지하고 싶었다. 3류 건달로서의 연기라면 ‘파이란’의 최민식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그는 최민식이 하지 못했던(영화에서 최민식은 죽는다) ‘아버지’로서의 삶을 보이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에게 성공의 맛은 어떨까. “글쎄요. 잘 나간다고 할 것이 있나요?”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에이, 예전에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1등은 한 적은 없었어요. 1등. 기분 좋죠.”

그는 기쁠 때 그냥 좋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십 수 년 연기를 해도 그리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선팅한 차 안에 앉아 있어도 알아 보는 사람이 많네요. 걱정이에요. 제가 담배를 피우다 아무데나 버리는 습관이 있거든요. 킥킥…” 소년 같기만 하다.

“글쎄요. 지금 가장 잘 안 되는 길이라면? 아마 김기덕 감독 영화를 바로 다시 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김기덕 감독과는 앞으로 영화를계속 하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좀…. 새로운 작품을 해 보고 싶네요.”

김기덕은 조재현을 두고 “이제 누구 누구 감독의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배우”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는 듯 싶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나쁜 남자

‘나쁜 남자’(11일 개봉)는 파괴적이다.

충격적인 ‘가학’이 있고, 그 가학에 만신창이가 되는 인간이 존재한다.

한기(조재현)는 사창가 깡패이다. 사회의 그늘에서 그의 생존법칙은 야만성과 폭력성이다.

김기덕 감독 영화의 남자들은 늘 이렇다. 한강에 자살한 사람들의 지갑을 터는 ‘악어’나 이국 땅에서 폭력청부로 살아가는 ‘야생 동물’들이다.

그들에게 도덕적 ‘선(善)’이나 기존 ‘질서’에 대한 복종을 들이댈 수는 없다.

그것은 곧 생명의 상실이다. 그들은 결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그래서 더욱 위악적이 되고, 그 알레고리 속에서 가학과 자학을 저지른다.

때문에 김기덕의 영상언어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폭력의 이미지들 역시 보편성에서 벗어나 충격을 던진다.

‘섬’의 낚시 바늘이나 ‘나쁜 남자’에서의 유리조각이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광고지를 말아 송곳처럼 상대의 목을 찌르는 것처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모욕을 당한 한기는 복수심으로 그녀를 매춘부로 만든다.

그리고 한 면은 거울, 다른 한 면은 유리인 벽을 통해 그녀가 매일 밤 망가지는 것을 지켜본다.

한기의 파괴심리는 다분히 전복적이다. 그것은 여대생과 창녀라는 계급에 대한 전복이며,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전복이다.

그 전복을 통해 영화는 동질성을 찾고자 한다.

이런 시도야말로 김기덕 영화가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어찌보면 가장 상투적인 감정들이다. 이를테면 사랑, 진정한 소통 같은 것.

기존의 시각이나 가치관으로 보면 그것들은 끔찍한 이탈이다. 김기덕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이‘불쾌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갖고있는 도덕적 틀 속에서의 편안한 이탈(대부분의 상업영화는 그 선을 넘지 않으면서 대리체험을 제공한다)에서 한 걸음만 나아가 그의 영화를 본다면 야만성과 폭력성에서 자기연민을, 절대 고독한 자의 상처, 그의 생존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선화가 자신을 타락시킨 한기를 받아들이고는 매춘부로 몸을 팔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화처럼 거울(유리)벽을 과감히 깨고 한기의 사랑을 확인하라.

그 순간 나쁜 남자 한기는 역설적이게도 나쁜 남자가 아니다.

땅을 기어가는 한마리 개미처럼, 늘 썩은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려야 하는 하이에나처럼 나름대로 생존의 법칙을 갖고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억압받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연민을 감독은 한기의 단 한 마디 대사로 표현한다.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

‘나쁜 남자’는 감독의 전작인 ‘파란 대문’에서 바닷가 여인숙으로 흘러 들어온 매춘부의 과거사쯤 된다.

전작과 비슷한 그림과 사진과 유리를 통한 정서의 이미지화, ‘악어’를 벗어날 수 없는 남자의 캐릭터는 분명 김기덕 영화의 색깔이지만 자기복제의 위험성도 동시에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훨씬 안정된 구도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선화가 한기의 계략에 걸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매춘부가 되는 과정에서 보듯 디테일 부족은 여전히 김기덕 영화의 단점으로 남아있다.

‘나쁜 남자’는 올해 베를린영화제(2월 6~17일) 본선 경쟁작으로 선정돼 김기덕 감독에게 3년 연속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진출이란 대기록을 안겨주었다.

그의 영화에서 새로운 극단적 영상언어와 리얼리즘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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