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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明과 暗] (1)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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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明과 暗] (1)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입력
200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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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또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음지와 양지는 그모양 그대로다. 오히려 그 골은 더욱 깊게 패이고 있다.엄동설한 속에 공항이 남쪽 나라를 찾아 떠나는 골프족들로 붐비는 이면에는 끼니조차 잇기벅찬 이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극과 극이 상존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고쳐 그릴 수는 없을까. 본보는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사회의 있는 그대로의명과 암을 조명하고, 그 접점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14세 소녀가장 미순이

중학 3년인 신미순(申美順ㆍ14ㆍ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양의 고된 하루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주전자 물이 꽁꽁 얼어붙은 5평짜리 옥탑방에서 힘겹게 일어나 1평 남짓한 부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침식사를 챙겨 드리곤 학교로 향한다.

미순이가 소녀가장 역할을 한 지는 꽤 오래다. 1급 정신지체 장애인이던 아버지가 1990년 교통사고로 왼쪽 눈까지 잃은 채 반신불수가 됐고, 어머니는 간단한 부엌일 조차 힘겨운 3급장애인이다.

미순이는 학교수업을 마친 후에도 ‘사생활’을 꿈꾸기 어렵다. “떡볶이를 사먹을 돈도 시간도 없어요.

아빠와 엄마가 거동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집으로 올 수밖에 없어요.” 미순이는 귀가 후 빨래거리를 모은다.

그 흔한 세탁기 한대 없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손빨래를 한다. 미순이 집에는 전화가 없다. 미순이는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전화”라며“밖에서도 부모님 상태를 알아 볼 수 있으면 해서”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미순이네 한달 수입은 정부 보조금 67만원이 전부다.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다. 미순이의 일주일 용돈은 5,000원. 등하교길 차비만 해도 빠듯하다.

“요즘은 방학이라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을수 있어 다행이예요. ” 미순이는 “고교진학 전 컴퓨터 공부를 정말 하고 싶다”고 작은 꿈을 전했다.

■13세 강남아이 형준이

미순이가 시린 손을 비벼가며 빨래를 하고 있을 시각.

또래인 중학 2년 김형준(가명ㆍ13)군은 서울 강남구 W빌라 90평짜리 집에서 플룻 개인과외를 받느라 여념이 없다.

형준이는 방학을 맞아 더 바빠졌다. 집으로 찾아오는 과외선생님이 5명으로 늘어난 데다 수영장과 검도학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형준이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 어머니는 카페 주인이다.

"요령을 좀 피워보려 해도 지키고 서 있는 가정부 아줌마 등쌀에 어쩔 수 없어요. 하루쯤 다 제끼고 친구들과 게임하고 쇼핑하며 놀고 싶은 데….”

형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을 주로 미국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보냈다.

현지 랭귀지 스쿨에 다니며 세계 각국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올해는 부모님과 호주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연수를 취소했다.

형준이는 용돈이 정확히 얼마인 지 모른다. 언제나 돈을 뽑아 쓸 수 있는 엄마 통장엔 돈이 떨어질 때가 없다.

방안가득 쌓인 게임 CD와 싫증이 나 창고에 넣어둔 수십만원짜리 플레이스테이션이란 오락기도 엄마가 건네 준 신용카드로 직접 샀다.

형준이는 내년에 유학을 떠난다. 형준이는 “친구들과 떨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대학 가려면 일찌감치 유학을 가는 게 낫다는 게 엄마 아빠 생각”이라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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