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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혜암종정…형생 청정 수행자로 살다간 참禪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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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혜암종정…형생 청정 수행자로 살다간 참禪僧

입력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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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인 혜암(慧菴) 스님이 31일 오전 10시 23분 경남 합천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82세.혜암 스님은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46년 해인사에서 인곡(麟谷)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효봉(曉峰)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당대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성철 스님 열반 후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94년과 98년 조계종 분규 때 단호한 소신과 추상 같은 의지로 종단개혁에 앞장섰다.

93년 해인총림 방장, 94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99년 4월 2일 종정에 추대된 이후 해인사 원당암에 주석해왔다. 해인사는 대중회의를 열어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1월 6일 오전 11시 종단장(7일)으로 거행할 예정이다.

31일 입적한 혜암(慧菴) 스님은 평생을 청정한 수행자로 살다 간 참 선승이었다. 성철 스님이 생전 “중노릇 제대로 하는 사람은 돌아가신 지월 스님과 혜암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스님은 산문(山門)의 모범으로 존경받았다.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27세 때인 1946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인곡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출가 이후 스님은 수행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태백산 동암과 지리산 상무주에서 오랜 기간 토굴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행은 지금도 선방 수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다. 1947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향곡 스님 등과 함께 4년 결사안거(結社安居)를 한 스님은 성철 스님이 입적한 뒤에도 돈오돈수(頓悟頓修ㆍ깊고 묘한 진리를 한번에 깨치고 한꺼번에 수행을 성취하는 것)를 지도한 성철 스님의 뜻을 좇아 납자들을 가르쳐왔다. 혜암 스님은 금오, 효봉, 경봉 스님 등 당대의 명승으로부터 남다른 총애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혜암 스님이 원리원칙을 고수해 온 것은 그 같은 수행자 특유의 성품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조계종이 어려울 때 등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님은 94년 종단개혁 때 개혁파 스님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다. 스님은 당시 원로회의 부의장 직권으로 원로회의를 소집, 서의현 총무원장을 그만두게 했고, 98년 조계종 분규 때는 종헌ㆍ종법의 수호를 강조, 현 총무원 집행부가 들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스님의 모습은 교계 안팎으로 크게 신망을 얻어 99년 조계종을 상징하는 종정에 추대됐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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