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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해가 밝았다 / 특별기고 - "타올라라, 아시아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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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해가 밝았다 / 특별기고 - "타올라라, 아시아의 불꽃"

입력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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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가지의 감격을 기다리며 이 새해를 맞는다. 하나는 새로운 세기의 월드컵을 완벽하게 이루어내 전 인류에게 바친다는 감격이다. 또 하나는 월드컵 16강 진입이라는 한국축구의 쾌거를 이루어내는 일이다.지난해 9ㆍ11 테러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 미국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경기장에서는 미국팀이 흰색 유니폼의 팔에 검은 선을 넣어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자마이카 대표팀을 맞았다. ‘승리만이 이 나라의 자존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선수들은 약속했고, 테러사건 후 처음 열린 이 국제경기에서 4만 명의 미국인은 성조기를 휘날리며 한마음이 되었다.

축구의 무엇이 이토록 그 어떤 스포츠와 달리, 국민을 하나로 묶고, 국가를 움직이는 것인가.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옛 프랑스 식민지로 인구 920만의 작은 나라다. 지난해 7월 21일 세네갈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고 돌아오던 날 수도 다카르는 북소리를 울려대는 인파에 파묻혔다. 분리독립을 주장해 온 카자만스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 평균소득의 10배에 달하는 돈을 선수들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한 세네갈은 열악한 경제사정 때문에 월드컵 참가비용을 위한 특별예산 편성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월드컵을 통해 국가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지 오래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인간의 발은 ‘직립(直立)해서 움직인다’는 동물적 본능에 그 존재성이 있다. 발은 시작이며 끝이다. 손과 비교하면 안다. 음악을 연주하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껴안고 노동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그것이 손이다. 손의 다양한 기능과 현란함에 비해 발의 존재성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축구는, 발이 멍에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이 동물적 숙명에 인간이 부여한 유일하고 위대한 문화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몇 개의 룰이 있을 뿐, 거의 무정형(無定型) 무제약(無制約)에 가깝게 그라운드에 선수들을 풀어놓는 축구야말로 ‘인간은 자유이다’라고 하는 명제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21세기 최초, 아시아 최초, 공동개최 최초라는 3개의 영광을 안고 치러지는 2002월드컵에서

우리를 괴롭힐 선수는 2001년 FIFA 최우수 선수인 포르투갈의 피구만이 아니다. 폴란드의 올리사데베도 있다. 19살 어린 나이에 나이지리아에서 폴란드로 건너와 귀화했다. 예선에서 8골을 기록한 그의 결혼식 주례를 수상이 설 정도의 이 폴란드의 축구영웅은 우리의 16강 진출을 괴롭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라는 어려움도 두 나라의 전통과 문화의 차이는 물론 국민성까지 비교의 대상이 되어 세계인의 눈에 비치게 할 것이다. 이미 그리스 축구협회는 월드컵 시찰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에게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와 2008년 유럽선수권을 공동 개최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일월드컵을 텍스트로 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붉은악마 응원단이 일본과 공동으로 사용할 응원가 CD의 제작을 마쳤듯, 일본의 성공을 비는 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하리라. 일본은 조 추첨에서 최종적으로 튀니지와의 대전이 결정되는 순간 환호했다. 일본 내 여론은 조1위로 16강에 진출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68세 생일을 맞아 일본 천황이 언급한 ‘혈연관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황은 과거를 정확히 알도록 애쓰면서, 월드컵을 통해 ‘양국민 사이에 이해와 신뢰가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거사를 비롯한 구원(舊怨)을 털고 일어나, 훗날 그때 그 두 나라 사람들이 가슴을 모아 아름답고 자랑스런 인류의 축제를 만들어냈다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

2002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행사를 넘어서서 21세기 인류의 문명에 어떤 전환점을 제공하리라는 전망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가 치를 월드컵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임을 알리는 불꽃이 될 것을 믿으면서.

/한수산 소설가, 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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