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몇 년전 사석에서 한국이 축구선진국이 돼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축구를 잘 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우리가 축구를 잘 하게 되면 유럽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를 줄 것이고 상품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16강. 아마 월드컵의 해인 2002년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한국이 그토록 16강을 염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월드컵 16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
■ 국가평가의 척도
축구평론가 장원재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는 축구는 완전한 경쟁이 보장된 스포츠라는 점에서 16강진출의 중요성이 크다고 말한다.
다른 종목은 (선수와 참여도에서) 경쟁이 제한되어 있지만 프로축구는 전세계적이며 프로선수가 가장 많은 종목이라는 것. 특히 프로축구는 많은 선수들의 급료를 지급해야 하고 연습구장과 전용구장 등 경제력과 사회간접자본을 갖춰야 가능한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한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다른 아마추어 종목이 단기적 지원으로 성적을 낸 것과 달리 축구는 단기투자로 성적을 낼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목의 16강과 질적으로 틀리다”며 “월드컵 16강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능력이 높은 수준에 올라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 사회통합의 역할
축구컬럼니스트 김기만(청와대 공보관)씨는 월드컵 16강이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난상황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며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과 중진국의 틈바구니에 있다. 사회적으로는 빈부의 격차와 동서의 분열이 심각하다. 월드컵 16강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에게 정신적 일체감과 자신감을 부여해 경제, 사회를 한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월드컵 16강은 한번도 정복하지 못한 것에 도전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국가상황이 안 좋을 때 16강에서 탈락한다면 국민 사이에 “역시 안돼”라는 운명론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씨는 “16강 진출이 이뤄진다면 스포츠맨십의 확산으로 대선과 총선에서 지역감정의 확산을 막고 깨끗한 선거 분위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민사기에 중요
문학평론가 서영채(한신대 국문학과) 교수는 16강 탈락이 미치는 국민적 스트레스에 대해 걱정한다. 서 교수는 “16강진출의 가장 큰 의미는 국민 사기진작에 있다”며 “16강 진출에 성공한다면 이를 계기로 축구복표 등 관련 산업의 발전 뿐 아니라 축구가 건전한 레저수단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통계적 의미
월드컵 16강 진출국은 대부분 중상위권 국가들이다. 1998년 프랑스대회까지 16차례의 월드컵 성적을 통산한 16강 국가의 경제 및 건강수준의 평균치를 따져 보아도 한국이 왜 16강에 가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월드컵 16강국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은 1만3,837.5달러. 한국의 9,675달러 보다 높은 수준이다. 수츨은 1,600억달러(한국 1,722억달러), 도시인구는 76.68%(한국 81%), 평균수명은 74.4세(한국 74.8세), 문자해독률 97.1%(한국 98%)이다. 한국은 경제 및 건강 등에서 통계적으로 16강의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World Almanac Books 발행 2001 세계연감 통계자료 참조)
■ 국가품격의 상승
전문가들은 한국의 축구문화 수준으로 볼 때 “적당한 투자없이 결과를 바란다는 점에서 한국의 16강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월드컵 16강은 분명 국가품격의 상승을 의미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아마추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선 것 처럼 홈에서 16강 진출은 우리 축구수준을 크게 끌어올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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