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바람(風)’으로 집약할 수 있다. 안팎에서 크고 작은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쳤고, 여기에휩쓸리지 않기 위해 바람막이를 치면서 1년이 지나갔다.결과는 일단 성공적. 한국경제의 성적표(지표)는 개도국 가운데 단연 돋보였고,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을 통해국제적 공인까지 얻었다.
대우차 매각, 국민ㆍ주택은행 합병, 하이닉스 처리 등 구조조정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현안만을 쫓아간 나머지, 미래를향한 ‘큰 그림’은 그리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풍(外風)
전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경기 침체와 미국의 경기후퇴가 한국경제를 1년 내내 짓눌렀다. ‘한국경제의 절반’으로비유되던 반도체 국제가격이 10분의1로 곤두박질친 것을 비롯,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공급과잉’문제가 제기됐다.
수출침체(11월말까지 11.7% 감소)→매출ㆍ수익악화→투자위축→고용마비의 연쇄반응도 이 때문이었다. 2ㆍ4분기를 계기로 조심스레고개를 들었던 경기 회복 기대감은 9ㆍ11 테러참사와 미국의 테러보복 전쟁으로 꺾이고 말았다.
연말을 맞아 테러 후유증이 수습되면서 내수를 중심으로한 경기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번엔 아르헨티나 및 일본발(發) 역풍에 직면해 있다.
■화풍(華風)
올해 한국경제의 키워드는 단연 중국이었다. 전 세계 동시불황속에서도 7% 대 나홀로 성장을 유지한 중국이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본격적인 경제대국화에 나서면서 한국경제는 ‘차이나 열풍’에휩싸였다.
10월 이후 대기업 총수들은 일제히 중국방문에 나섰고 기업들은 미국ㆍ일본에 맞춰져 있던 구심점을 중국으로옮겨 미래경영전략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정풍(政風)
연초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선거가 없는 올해가 경제의 틀을 잡는데 가장중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바람은 이미 경제를 엄습했고, 행정부는 질질 끌려다닌 한 해였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초당적 협력’에대한 기대속에 탄생했던 여ㆍ야ㆍ정 협의회는 ‘사진촬영용행사’로 끝났다.
추경이 여ㆍ야대립으로 발목을 잡히면서 경기부양은 선제적 시행의 타이밍을 놓쳤고 ▦법인세 1%포인트 인하 ▦기업구조조정특별법처럼 원칙도 목표도 효과도 불분명한 정책이 ‘여ㆍ야합의’란이름 아래 양산됐다.
행정부의 눈치보기도 심해졌다. 민간위원들의 강력한 인하 건의에도 불구하고 농림부는 스스로 여론과 정치권을 의식해추곡가 동결방침을 정했고 주 5일 근무제 역시 노사에만 맡긴 채 정부는 뒤로 빠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금풍(金風)
경기는 나빠도 돈은 넘쳐났다. 경기회복을 위한 저금리 정책은 옳은 방향이었지만 국민적 ‘인플레 기대심리’가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상 유례없는 마이너스 실질금리는 자금의 부동(浮動)화를 심화시켜 뭉칫 돈을 증시로 부동산으로 옮겨다니게 했다.
그 결과증시와 건설경기는 다소 살아났지만 시장의 투기장화와 불안정성도 함께 높아졌다. 특히 은행과 카드사들의 대출세일은 소비진작 효과에도 불구, 가계부실의잠재적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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