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가도 우리의 마음을 적신 글의 향기는 남는다.가수는 가도 우리는 두고두고 그 애잔한 멜로디를 읊조린다. 배우는 가도 무대와 스크린 속에서의 명대사와 명연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화가는 땅에 묻혀도 그림은 우리의 거실에 걸려있고, 연주자는 사라져도 그 선율은 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학자와 지사(志士)를 보냈어도 후대는 그의 높은 업적과 정신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2001년에도 나라 안팎으로 많은 문화ㆍ예술ㆍ학계 인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
■가요ㆍ팝
스타가 명멸하는 대중음악계. 새로운 별들이 줄이어 나타나지만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었던 추억의 스타들은 우리 곁을 떠났다.
트로트계의 두 거목 고운봉(81), 황금심(79)이 7월 30일과 8월 1일 이틀 간격으로 타계했다.
외국에서는 후두암으로 투병 중이던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57)이 11월 29일 존 레논에 이어 두번째로 우리 곁을 떠났고 5월 4일에는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와 함께40년대 스탠다드 팝계를 주름잡았던 ‘솜사탕 보컬’ 페리 코모(89)가 사망했다.
그들이 살았을 때 무심코 흘려 들었던 노래들을 망자를 생각하며 다시 들으면, 젊었을 적 그들의 모습과 그 노래를 즐겨 들었던 때의 기억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고운봉의 ‘선창’,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조지 해리슨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페리 코모의 ‘Till the End of Time’ 등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가.
세월의 흐름과는 관계없다는 듯, 여전히 발표되던 때 그대로인 그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케 한다.
■공연
한국 연극사의 산 증인 고설봉(88), 모노드라마 ‘품바’의 작가 겸 연출가 김시라(56)씨가 세상을 떠났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품바’는 각설이 타령의 걸판진 가락에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 1981년부터 20년 가까이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4,300회 이상 공연되고 100만 명 이상 관객을 모은 우리 시대의 히트작이었다.
연극배우 고설봉씨는 지난 해 90이 가까운 고령으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이 울고’에 출연하는 등 죽을 때까지 무대를 지킨 원로였다.
일제시대부터 주로 대중극에 출연해 온 그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근ㆍ현대연극사를 구술하고 3권의 귀중한 증언집을 펴내기도 했다.
■영화
“잠파노가 왔어요. 잠파노.” 성우 이치우의 목소리로 기억에 남는 ‘길’에서의 차력사 앤서니 퀸(86).
‘노틀담의 꼽추’ ‘아라비아의 로렌스’ ‘희랍인 조르바’ ‘25시’ 등 150여 편의 영화에서 그는 행복한 모습보다는 무겁고 어두운 연기를 보여 주었으나, 전쟁을 겪은 피폐한 심정의 우리 관객은 ‘상처로 상처를 위로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멕시코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많은 여성과의 로맨스, 80세의 나이에 13번째의 아이를낳은 노익장도 그를 화제의 인물로 만들었다.
말년에는 미술가로 활동해 1998년 서울에서 아들 로렌조와 전시회를 가졌다.
■음악
민간 교향악 운동을 선도한 지휘자 홍연택(74), 국악관현악의 선구자 김희조(81), 최근 3~4년 간 오페라 붐을 주도한 연출가 문호근(55)씨가 타계했다.
홍연택씨는 1970년대 국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전신) 상임지휘자를 거쳐 1981년 국내 첫 민간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를 창단해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체로 성장시켰다.
오페라ㆍ연극 연출가 문호근씨는 70, 80년대 주로 민중극 계열에서 활동하다 98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에 취임하면서 민간오페라단과 함께 국내 첫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어 오페라 관객 확산에 불을 당겼다.
윤이상 오페라 ‘심청’,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파멸’ 등의 국내 초연을 연출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81)은 유대계 바이올린의 대부로 세계 음악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거인이었다.
베를린에서 오페라 지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탈리아 출신 주세페 시노폴리(54)는 특히 베르디와 푸치니 작품의 대담한 해석으로 유명했으며 런던필, 산타체칠리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유명 오케스트라를 맡아 활동했다.
■미술
청각장애를 딛고 불타는 예술혼을 보인 한국화의 거목 운보(雲甫) 김기창(89) 화백의 별세는 우리 미술계의 큰 아픔이었다.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독특한 예술적 경지를 개척하면서 그가 남긴 작품은 ‘군마도’ ‘문자도’ 등 2만 여 점. 8세 때 장티푸스로 농아가 된 이후 만년에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하는 등 장애인 돕기에도 나섰다.
타계 두달여 전에는 입원 중인 서울의 병원에서 한국전쟁 때 헤어진 동생 기만(북한 공훈화가)씨와 50년 만에 만나 분단의 아픔을 실감케 했다.
한국 예술사진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임응식(89) 전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는 1950년대 말 살롱사진에 반기를 들고 서민의 삶을 담는 리얼리즘 미학을 개척한 사람이다.
1953년 서울 명동에서 찍은 ‘구직(求職)’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생생히 담아 두고두고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문학
지난 해 서정주, 황순원씨를 보낸 문학계는 올해 동화작가 정채봉(55)씨와 소설가 강신재(77)씨를 잃었다.
1973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씨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로 ‘오세암’ ‘초승달과 밤배’ 등의 주옥 같은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문단의 한 글쓰기 장르로 자리잡은 이른바 ‘어른을 위한 동화’는 그에 의해 개척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 ‘젊은 느티나무’(1960년)의 첫 구절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한국현대소설사에 남을 감각적 문장이었다.
소설가 강씨는 1949년 등단한 이래 전쟁과 산업화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에서 젊은이들의 모럴, 특히 애정풍속도를 인습을 뛰어넘는 문제의식과 섬세한 필치로 그려 대중소설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인 작가로 평가받았다.
■학계
학예사에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일생을 바친 고고학계의 원로 한병삼(68)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그는 한국 신석기 시대 발굴과 연구의 기폭제가 된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경북 경주 조양동 유적지를 직접 발굴해 신석기에서 초기 철기시대 연구의 기반을 마련한 고고학계의 대부였다.
임승국(74) 전 경희대 영문과교수는 강단의 사학계가 위작이라고 보는 고대 사서 ‘한단고기’를 완역해 소개함으로써 1980~90년대 재야사학 열풍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그는 영문학을 강의하다 백제사를 고리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계량경제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 학계에서 경제사 분야를 이끌어 온 조기준(84) 전 고려대 교수는 1970년대 벌어진 한국자본주의태동 기점 논쟁을 주도했다.
국내 서양사 개척자의 한 사람인 민석홍(76) 서울대 명예교수와 영문ㆍ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이가형(80) 국민대 명예교수도 별세했다.
■언론
12월 21일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송건호(74) 전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독재권력에 대한 비판과 언론 민주화에 몸바친 지사이면서도 한국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학자였다.
1984년 해직 언론인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해 85년 월간지 ‘말’, 87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했다.
미국에서는 캐서린 그레이엄(84) 워싱턴 포스트 회장이 사망했다.
‘언론계의 퍼스트 레이디’로 통하는 그는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당시 권력의 온갖 압력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언론 자유를 확보했다.
문화과학부
■손예진·소유진·류승범등 "우리들은 올해 뜬별 이래요"
올해 대중문화계에 진 별도 있지만 뜬 별도 있다.
‘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와 함께 실린 화장품 광고 모델. 바로 하리수의 등장이었다.
트렌스젠더로서 대중의 관심권에 들어오자마자 넘치는 끼와 예쁜 얼굴, 섹시한 체구로 배우( ‘노랑머리 2’), 가수( ‘템프테이션’) 에 이어 방송진행자로서 단박에 최고의 연예인이 됐다.
영화 ‘죽거나 나쁘거나’ 와 ‘다찌마와 리’에서 ‘배우’ 명함을 처음 내밀었던 류승범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주목할 연기자로 떠올랐다.
영화 전문지가 올해 가장 주목받은 배우로 꼽은 장진영도 영화 ‘소름’ 으로 예비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한 ‘친구’의 곽경택감독도 스타가 됐다.
단 한편의 드라마로 빛을 발한 두 여자 신인, 손예진과 소유진은 방송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탤런트로 자리잡았다.
손예진은 ‘맛있는 청혼’에서 청순한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더니 드라마 ‘선희 진희’ 와 영화 ‘취화선’의 주연을 잡았다.
드라마 ‘루키’에서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소유진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예ㆍ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맹활약했다.
배우 조재현도 느지막이 드라마 ‘피아노’에서의 명연기로 내년에 가장 주목받을 연기자로 떠올랐다.
“올 한해는 내 한 해였슴다” 라고 외치는 개그맨 강성범. 그는 분명 코미디계의 혜성이었다. ‘수다맨’ ‘연변총각’ ‘환장하겠네’ 등 그가 출연한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가 모두 대박을 터트렸다.
부침이 심한 올 한 해 가요계에서 우뚝 선 가수는 브라운 아이즈, 왁스, 성시경이다.
브라운 아이즈는 방송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벌써 1년’ 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앨범이 62만 장이 팔렸다.
립싱크로 일관하는 가수답지 않은 가수들이 범람한 가운데 가창력으로 승부를 건 왁스는 2집 ‘화장을 고치고’로 스타 가수의 입지를 굳혔고, 달콤한 목소리와 잘 생긴 외모의 성시경은 ‘처음처럼’으로10~20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가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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