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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뉴스메이커 10인] (10)오사마 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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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뉴스메이커 10인] (10)오사마 빈 라덴

입력
2001.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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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44).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인 그의 이름은 올해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렸다. 터번에 희끗희끗한 수염과 미군 야전점퍼에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들고 있는 그에게는 현상금 2,500만 달러가 걸려있다.테러와의 전쟁,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그가 배후 조종한 것으로 미국이 믿고 있는 9ㆍ11 테러 때문에 세계의 역사는 BT(Before Terror)와 AT(After Terror)로 구분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새 밀레니엄의 국제 질서는 9ㆍ11 테러를 기점으로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방향을 전환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가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미국과 서방에 대항하는 이슬람의 순교자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그렇게 됐다.

미국은 9ㆍ11 테러가 터지자 곧 바로 응징ㆍ보복의 화살을 빈 라덴에게 겨눴다.그가 배후 교사범이라는 직접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이미 1998년 케냐ㆍ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등의 용의자로 지목돼온 그가 9ㆍ11과 같은 테러를 기획ㆍ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비호한 혐의로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탈레반을 공격했으며, 지하드(聖戰ㆍ성전)를 외치며 결사 항전했던 탈레반은 2개월 만에 붕괴됐다. 덕분에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탈레반 치하에서 엄격한 율법으로 고통을 겪었던 아프간 주민들은 해방됐으며 반 탈레반 세력인 북부 동맹을 중심으로 한 과도 정부가 22일 출범했다.

아랍어로 ‘사자’라는뜻인 오사마. 그는 왜 반미의 선봉에 나선 것일까. 사우디 건설회사 부호의 자녀 52명 중 17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킹 압둘 아지즈 대학을 다닐 때 까지만 해도 이슬람 신앙에 푹 빠진 것만 빼면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졸업 직후인 1979년 구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 하면서 부터 10년간 대소(對蘇) 투쟁에 나섰다. 그는 당시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국의 패권주의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슬람 민중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미국 편에 선 사우디 왕정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정부활동을 했다. 이후 수단으로 도망간 그는 가죽공장, 건설회사, 은행 등의 사업을 하면서 테러조직을 양성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다란 미군기지 폭파 사건으로 수단에서 추방된 그는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몸을 의지하게 된다.

그의 신념과 목표는 미국 등 패권주의를 내세운 서방을 타도하고 부패한 이슬람 왕정 국가들을 몰아낸 후 민중을 위한 신정일체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미군의 융단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도 토라 보라의 차가운 동굴 속에서 반미와 지하드의 의지를 더욱 강건히 했다.

그는 26일 공개된 비디오에서 이슬람 민중들에 대해 “서방전체가, 특히 미국이 이슬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은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지만 그의 메시지처럼 제 2, 제 3의 빈 라덴이 나올지 주목된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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