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이념논쟁은 민족주의의 희석, 민주주의의 유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왜곡에 대한 상반된 평가와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함재봉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발행된 ‘계간사상’ 겨울호에 발표한 ‘한국의 이념적 갈등구조와 그 역사’라는 논문에서 “현재 우리의 이념적 논쟁은 민족주의의 희석과 민주주의의 유보, 시장경제의 왜곡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것의 불가피성을 강변하는 데서 파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논쟁은 한국 현대사의 해석에 대한 논쟁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정체(政體ㆍpolity)의 정체성(正體成)에 대한 논쟁이어서 그 정체성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논문은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ㆍ이념적 상황을 명료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함 교수는 친일파 수용과 일본과의 조기 국교정상화에 찬성하고 북한과의 효율적 경쟁을 위한 민주주의의 유보와 자본주의 왜곡을 통한 중상주의적 경제체제 구축을 긍정적으로 보면 ‘보수’라고정의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좋게 말해서 현실주의, 실용주의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임기응변적이고 원칙과 이론이 결여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반면 진보주의는 나름대로 일관성을 구축해 보수주의보다 원칙에 충실하고 이론에 부합한다.
그러나 함 교수는 “보수주의적 입장이 이념 또는 이론적으로 허점 투성이이나 현실적으로 성공한 반면 진보는 실패했다는 점이 중요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역사를 통해 성공하고 승리한 한국의 ‘보수’가 도전을 받게 된 것은 1997년 말 IMF 사태 이후부터라고 그는 보고 있다.
한국 경제의 발전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고 주류정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그 징후이다.
김대중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한국형 발전모델의 해체와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매우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고, 과거의 체제와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전락한 보수주의자들과의 이념논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김대중 정권이 한국의 산업을 자발적으로 해체시키고 있고, 시장주의보다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분배정책에 주안점을 둔다는 의구심을 더욱 키워갔다.
함 교수는 특히 “최근 50년 동안 제시된 수많은 이론과 사상이 그 어느 것 하나 우리 현대사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며 “우리의 이념논쟁은 현대 한국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간 사상 겨울호는 함 교수의 논문을 비롯해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의 ‘세계화와 한국의 이념정치’ 등 7편의 논문으로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라는 특집을 꾸몄다.
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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