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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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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입력
200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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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이 저물고 있다.부푼 기대 속에 맞았던 21세기의 첫해가 이처럼 참혹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동시다발 테러,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한 보복전, 미국전역을 휩쓴 탄저균 기습 등으로 세계는 먹구름에 휩싸였다.

21세기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열렸다.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이 붕괴하고,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피랍 여객기가 추락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다른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던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2001년을 보내면서 미국 델타항공의 한 승무원이 쓴 글을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애틀랜타로 가던 델타 15기는 북대서양 상공에서 "미국의 전 항로가 폐쇄 됐으니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하라"는 짧은 전문을 받았다.

승무원들은 의논 끝에 캐나다의 갠더 공항에 착륙허가를 요청했다. 그날 갠더 공항에는 53대의 비행기가 비상착륙 했고, 그 중 27대가 미국적 비행기였다.

승객들은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을 비행기에 갇혀 지샌 후 차례로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밟았다.

인구 1만4백 명의 작은 마을인 갠더는 겁에 질린 1만5백 명의 손님을 맞았다. 반경 75킬로 안에 있는 모든 학교와 강당 여관 일반 가정 등이 숙소로 제공됐다.

간이침대 슬리핑 백 각종 침구가 총동원돼 잠자리를 만들었다. 학교 버스들이 공항에서 쉴새 없이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학생과 주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델타 15기에 타고있던 승객들은 갠더에서 45킬로 떨어진 루이스포트라는 마을의 고등학교 건물에 묵었다.

노약자들은 일반 가정으로 가고, 한 임신부는 24시간 문을 여는 병원 바로 앞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누구나 하루에 한번 미국과 유럽에 전화와 e메일을 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따뜻한 음식이 학교로 배달됐다.

다른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데려가 골라먹도록 해줬다. 짐을 비행기안에 두고 내린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세탁기 사용 토큰도 배급됐다.

하룻밤을 지내고 손님들이 안정을 되찾자 마을 사람들은 관광안내에 나섰다.

배를 타고 호수와 항구를 유람하고, 숲을 산보하고, 빵집에 가서 갓 구은 빵을 사먹기도 했다. 그 모든 프로그램 뒤에는 적십자가 있었다.

14일 아침 갠더 공항을 떠날 때 승객들은 긴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처럼 가까워졌다. 그들은 각자 경험한 마을 사람들의 친절을 털어놓으며 눈물 흘렸다.

한 사람이 나서서 "루이스포트 주민들의 친절에 보답하기위해 기금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즉석에서 기부금 약정서를 모아보니 10만 4,500달러나 됐다.

모금을 제안했던 남자는 버지니아 출신의 의사였는데 "나는 모금된 액수만큼 기부하겠다. 그리고 델타항공사에도 기부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델타 15'로 명명된 그 기금은 루이스포트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돕는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

산불이 휩쓸고 간 벌거숭이 산에도 봄이 오면 새 싹이 돋아 난다. 새 나무들이 자라서 산불의 상처를 덮는다.

증오가 휩쓸고 간 폐허 위에 사랑이 새 싹을 티우고, 사랑이 자라서 증오의 상처를 덮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눈이 아프도록 중동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보았다. 수용소에서 자란 아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도 보았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가.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를 죽이는 것은 테러가 아닌가"라고 소리치는 아라파트의 항변도 들었다.

2001년은 참혹한 미국의 테러 현장과 중동의 울부짖음을 우리들 마음속에 함께 각인시켰다.

2001년 9월 작은 마을 루이스포트에는 사랑이 있었다. 재앙 속에 사랑의 싹이트고, 마침내 사랑은 재앙을 이기고, 사랑은 또 지구 저편으로 흘러갈 것이다.

21세기는 재앙으로, 사랑과 기도로 첫 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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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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