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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선정 올해의 10대 뉴스(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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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선정 올해의 10대 뉴스(국내)

입력
200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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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鄭·陳·尹…4대 게이트 파문이른바 ‘4대 게이트’가 전국을 뒤흔든 한해였다.

9월 이용호 게이트를 시작으로 12월 윤태식 게이트가 터졌고, 지난해 검찰수사 이후 묻혀있던 정현준ㆍ진승현 게이트마저 부활했다.

게이트란 용어는 1972년미국 닉슨대통령의 민주당사 도청사건인 ‘워터게이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권력형 비리사건을 뜻한다.

‘4대 게이트’는 모두 선진기법을 빙자한 젊은 벤처사업가의 불법적인 사업확장에 금전적 대가를 노린 정ㆍ관계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 사업가는 변변한 기술없이 기업인수ㆍ합병(M&A)과주가조작, 불법대출을 통해 수백억~수천억원대의 부를 쌓았다.

여기에는 그동안 음지에서 일한다던 국가정보원의 일부세력이 벤처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배후에서 지원한 것도 일조했다.

‘4대 게이트’의 파문은 청와대ㆍ검찰ㆍ국정원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엘리트집단을 강타했다.

신광옥 전 법무차관과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이 구치소로 향했고, 임휘윤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신승남 검찰총장은 탄핵위기를 맞았다. 검찰의 재수사와 특검제 도입은 단골 메뉴가 됐다.

‘4대 게이트’는 여전히 실력보다는 돈이나 배경이 우선되는 우리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수지김 살해 조작·은폐

1987년 발표된 ‘여간첩 수지김 살해사건’이 검찰의 재수사 결과 안기부에 의해 은폐ㆍ조작된 사실이 15년만에 밝혀졌다.

87년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과 안기부 고위간부들이 사건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았고 외무부 고위관리들의 가담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지난해 초 남편 윤태식씨의 살인혐의를 포착, 재수사에 착수하고도 국정원의 압력으로 내사종결한 사실이 드러나 이무영 전 경찰청장과 김승일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이 구속되는 사태로 발전했다.

또 남편 윤씨가 벤처업체 패스21의 급성장과정에서 정ㆍ관ㆍ언론계 인사들에게 ‘주식로비’를 벌인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벤처게이트’로 비화했다.

■언론사 세무조사

지난 2월 시작된 국세청의 23개 언론사 세무조사는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올 상반기 최대 이슈였다.

국세청은 단일업종 세무조사로는 사상 최대 인력을 투입, 4개월 동안 조사를 벌인 끝에 6개 언론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5,056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도 조선ㆍ동아ㆍ국민 등 3개 언론사주를 구속하고 6개 언론사와 대표자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내부 부당거래 조사와 신문고시 부활 등 후속조치가 뒤따랐다.

사상 최초의 전면적 공개 세무조사를 두고 시민단체와 여당의 ‘언론개혁론’과 일부 언론과 야당의 ‘언론탄압론’이 팽팽히 맞서는 등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인천국제공항 개항

40여년의 김포시대를 끝내고 인천국제공항이 3월29일 개항, 21세기 동북아 허브 공항을 향해 비상하고 있다.

7조8,000억원이란 천문학적 공사비가 투입돼 8년4개월여의 대장정끝에 영종도 일대 바다를 메워 1차로 350만평(여의도의 약 4배) 규모로 문을 열었으며 2020년까지 1,700만평으로 확대된다.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인 여객터미널(15만평)과 화물터미널, 연간 17만회의 이ㆍ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2개 등을 갖추고 있다.

하루 345편의 항공기가 이ㆍ착륙하고 연간 이용승객 2,700만명, 화물처리량 170만톤으로 세계 유수 공항으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개항 1년도 안돼 항공관련 월간지인 홍콩 ‘비즈니스트래블러 아시아 퍼시픽’이 세계 5위 공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주 5일 근무제 확정

올 한해동안 노ㆍ사ㆍ정 3자의 최대 이슈였던 주 5일 근무제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내년 7월 공무원 등 공공부문과 금융ㆍ보험업, 1,000명 이상 대기업부터 시행에 들어가 2010년까지 4단계에 걸쳐 전 사업장으로 확대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마침내 5일을 일하고 이틀을 쉬는 선진국형 생활이 가능해진 셈이다. 하지만 생활과 산업 전반을 바꿔놓을 혁명적인 변화인 만큼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다른 목소리들을 내고 있어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소비촉진 등을 통한 경기진작과 새로운 고용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겠다는 정부의 복안에 어려운 경제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며 반대하는 재계, 내년부터전 사업장에서 시행하자고 압박하는 노동계의 주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재정 파탄

지난해 의약분업이 나라를 흔들었다면 금년에는 건강보험 재정 파탄이 보건복지분야의 최대 이슈였다.

보험재정의 파탄은 사회보험, 나아가 복지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복지확대 정책을 펴온 현 정부에게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의료수가를 너무 올려주었기 때문이라느니, 보험료 인상을 지나치게 억제했기 때문이라느니 말도 많았다.

결국 최선정 복지부장관이 물러나고 복지부 직원 5명이 징계를 받았다. 5월31일 정부는 지역건보에 진료비의 50%(?球翁灌繩? 포함)를 지원하는 재정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담배부담금의 처리 지연으로 올해에만 3,300억원의 수입 차질이 발생하는 등 대책은 시행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가 통과시킨 건강보험 재분리안이 재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DJP공조 붕괴, 新여소야대

9월3일 자민련이 민주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나라당이 국회에 낸 임동원 통일장관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DJP공조가 붕괴했다.

15대 대선 직전인 1997년 11월3일 DJP 후보단일화로 시작, 3년6개월 여 공동정부를 운영해온 2여 협력의 틀이 깨진 것이다.

8ㆍ15 방북단 파문과 관련, 한나라당의 임 장관해임 요구를 보수파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지지한 모양새였지만 이면에는 ‘JP대망론’ 등을 둘러싼 2여간 힘겨루기도 한 몫 했다.

표결 당일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해 온 장재식의원 등 4명이 민주당으로 복귀하면서 자민련은 비교섭단체로 전락했고, DJP 갈등은 정점에 이르렀다.

정국 역시 2여1야에서 2야1여라는 신 여소야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야당 재ㆍ보선 승리, DJ 총재직 사퇴

여야가 총력전을 펼쳤던 10월 25일 재ㆍ보궐선거는 한나라당의 3:0 완승으로 끝났다.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136석을 가진 우리 정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거야’(巨野)가 됐다.

민주당은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극심한 내홍(內訌)에 시달렸다. 이는 결국 대통령이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시점에서 여당 총재직을 내놓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당 쇄신 방안을 연이어 내놓는 등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이며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반면 ‘거야’ 한나라당은 수의 힘을 바탕으로 교원정년 연장법안 통과 등을 강행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만나기도 했다.

■김정일 방중ㆍ방러와 남북관계 교착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1월15~20일) 및 러시아 방문(7월26~8월18일)을 통해 ‘북방 3각 관계’를 복원했다.

연초부터 ‘신사고’를 제창했던 김 위원장은 상하이(上海) 정보통신(IT) 단지를 방문, 북한식 개혁ㆍ개방의 모델을 모색했다.

방러 때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한 장기 외유로 파격을 연출했다.

중ㆍ러 관계를 다진 뒤 남북대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으나 북한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와 대테러 전쟁의 영향으로 위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3월 이후 줄곧 소강국면이었던 남북관계는 8ㆍ15 방북단 파문과 북측의 4차 이산가족 행사 연기, 11월 6차 장관급회담 결렬 등으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김 위원장의연내 답방기대도 결국 무산됐다.

■정주영씨 사망, 현대家 쇠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3월21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맨손으로 출발, 현대자동차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국내 최대재벌을 일군 고인은 대한체육회장 등을 맡아 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92년에는 국민당을 창당,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98년 6월에는 소떼를 몰고 방북, 남북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이끌어 냈다.

정 전 명예회장의 사망은 현대가(家)의 붕괴로 이어졌다.

한때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현대그룹은 형제간의 반복과 구조조정으로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 주력기업들이 떨어져 나가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그룹 등으로 핵분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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