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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령 소설집 '당진 김씨' / 질펀한 방언잔치 '2001년판 우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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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령 소설집 '당진 김씨' / 질펀한 방언잔치 '2001년판 우리동네'

입력
2001.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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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란 우애령(56)씨의 첫 창작집이 충청도 사투리로 질펀하다.남편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는다며 10여년 전 내려가 허름한 농가를 마련한 게 충남 당진군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거기서 농촌의 삶을 배우고, “도시의 불행은 머리 속에서 나온다. 농촌에는 거름 냄새만큼 진한 인정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를 소박하게 터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우씨는 10편의 당진 이야기를 묶어 ‘당진 김씨’(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냈다.

“지가 못생긴 건 지두 알어유… 이쁜 각시랑 살아보구 싶은 맴이 잇는 것두 다 알구유…”

“암이라니유? 그런 병에 걸릴 이유가 없구먼유.” 그곳 사투리는 느리고 무겁다.

‘ㅏ’ ‘ㅗ’ 같은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는 양성모음을 써야 할 자리를 ‘ㅓ’나 ‘ㅜ’ 같은 음성모음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오래 묵은 사투리를 쓰는 그곳 사람들은 속으로 삭이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 ‘의뭉스럽다’는 말도 더러 듣는다.

표제작 ‘당진 김씨’의 마누라도 20년을 얼굴이 못생겼다는 자괴감을 품고 살았다.

한번은 남편의 타박에 아이를 들쳐업고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남편은 대놓고 못난 것을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마누라의 가슴에는 한이 맺혔다.

그 마누라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니, 당진 김씨의 목구멍이 꽉막힌다. 두부모판을 이고 아이를 업고 장으로 가던 못난 마누라의 뒷모습이 뒤늦게 마음에 와 닿는다.

부부의 뜨뜻한 정이 차오르기까지 20년이 걸린셈이다.

마누라 죽은 지 열 달 지나서 재취를 들이는 게 대수일까. 요즘 사람들은 다 그렇단다.

단편 ‘자두’의 당진군 부인네들은 그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이를 부득부득 간다. 죽은 마누라 첫 제사가 돌아오기도 전에 들어선 김씨네 새 마누라는 ‘서산 쪽 다방에서 커피 끓이던 사람’이다.

이래저래 기막힌 마을 부인네들이 마음의 울타리를 높게 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정이 많다.

잡초가 아니라 애써 핀 꽃이라며 정성껏 봉숭아를 옮겨 심고, 염소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고 기쁜 소리를 내는 새 김씨댁이 영 밉지 않다.

도시에서는 가까운 이웃과의 불화로 시달리는데, 농촌에서는 타지에서 온 사람도 도탑게 품어준다.

그렇다고 우리 농촌이 훈훈하기만 할까. ‘첫사랑’의 고씨는 다방의 미스 서한테 공을 들이느라 동네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 썼다.

연락처도 안 남기고 떠난 미스 서를 원망도 하지 않고, “지가 첫사랑의 남자허구 똑같이 생겼대드먼유”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어리숙한 농촌사내를 등쳐먹는 세상, 돈이 무엇보다 앞서는 세상. 우리 시대에 맞닥뜨려야 하는 농촌의 비정한 현실이다.

우씨의 작품들은 소설가 이문구씨가 1970년대 ‘우리 동네’ 연작으로 보여주었던 충청도 농촌 현실의 21세기판으로 읽힌다.

평론가 황광수씨는 “이문구가 언어의 유희적 속성까지 마음껏 풀어놓은 데 비해 우애령은 아직 탐구자적 진지성 때문인지 말의 힘이 흘러넘치게 할 정도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우애령 판 ‘우리 동네’의 힘은 그 ‘탐구자적 진지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우애령씨는 “각박한 삶에 지쳐 고향이 그리울 때 독자들이 내 소설을 고향 친구처럼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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