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59) 시인이 새 시집 ‘적멸의 불빛’(문학사상사 발행)을 냈다.그의 열한번째 시집이다. ‘60을 바라보면/ 뜨거운 것도 오히려 서늘해지는/ 나이’가 된 시인은 ‘격정도 비정(非情)도 이젠 내게 없다'고 한다(‘분별’).
그는 대신 담담하게 생활을 이야기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다리의 관절(‘바람에 흔들리며’), 더 이상 빨아 먹을 단물도 없는 이순(耳順)에 앓는 충치(‘충치’), 몸이 겪는 사연이 시가 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을 아파하지 않고 시어로 화하는 날이 왔다.
‘시 한 줄을 찾아/ 온 밤을 까칠하게 지샌 날/ 새벽녘 되어 코피가 터진다’(‘시한 줄’) 동백꽃 같은 붉은 피가 맺히도록 간절하게 집착했던 시인의 얇고 날카로웠던 가슴이 어느새 두툼해졌다.
모서리가 둥글어진 가슴을 안고집으로 돌아오는 빙판길에서 두 발 달린 짐승을 봤다.
‘네발 짐승 잘도 쏘다니는 눈밭을/ 휘청거리는 두발/ 나머지 두 손은 항상 무언가를/ 붙들어야 한다’(‘두발의 짐승’).
그는 ‘인생은 땅에 묻힌 김칫독’이라고 노래한다. 맵고 짜고 쓰고 달고 신 맛을 두루 거쳐 ‘이제한 60년 되었으니/ 제 맛이 들었을까’(‘겨울의 끝’).
세상이란 본디 언제나 겨울이라고 한다. 겨울 추위가 때때로 누그러지는 것은 시인의 숨결 때문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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