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야스쿠니' 파문속 안에선 개혁앞장 '스타총리'일본 재무성은 20일 올해 보다 2.3%가 감축된 47조 5,472억엔 규모의 2002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4년 만에 긴축 편성된 이번 예산안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ㆍ69) 총리의 구조 개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고이즈미가 4월 총리로 취임한 이후 일본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가장눈에 띄는 것이 정치 행태의 변화이다.
자민당 내 파벌의 세력 분포가 당직ㆍ각료 인선과 정책 결정의 최대 요인이었던 것과 달리 총리의 주도권이크게 강화돼 마치 대통령제 정부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총리가 야당의 질의에 떠밀리며 교과서적 답변을 반복하던 과거와는 딴판으로 야당을 역공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는 모습도 새롭다.
경제 분야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구조 개혁에 따라 기업도산과 실업 등 고통이 뒤따르고 있으나 국민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거품 경제 붕괴 후 10여년간 정부와 국민은 일관되게 경기 부양책에 의지해왔다. 경기 부양을 뒤로 미루고 구조 개혁에 치중하는 고이즈미의 정책과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연착륙에서 경착륙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고이즈미는 취임 직후 80%를 웃돌았고지금도 70%를 넘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해왔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얘기되는 1990년대는 장기 불황과 이에 따른 경제침체 및 인구의 20%에 가까운 고령자 등으로 사회의 활력이 저하됐으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 국민의 집단적 ‘판단 중지’는 대외 문제에서 두드러졌다. 고이즈미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중 양국과 마찰을 빚었으며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8월 13일의 사적 참배로 ‘8월 15일의 공식 참배’라는애초 방침에서는 후퇴했지만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하지만 일본내의 논의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때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잠잠했다. 사상 최초의 자위대 전시 해외 파견 등 안보 정책을 두고도 본격적인 국민적 논쟁은 이뤄지지 못했다.
경제에 사로잡혀다른 분야에 눈길을 빼앗길 여유가 없는 데다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며 전쟁의 기억이 풍화한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이런 무력감에서 비롯한 지지는 언제든 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 대안이 없어 억눌려 있는 실망감이 폭발하면 ‘고이즈미 개혁’은 절반의 성공조차 기약하기 어렵다.
고이즈미는 지난 8개월간 아무런 실질적 경제구조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핵심인 금융재생 방안으로 부실채권 정리를 제시했으나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은 오히려 늘어났다.
5월 1만 4,500엔 대였던 닛케이(日經)평균주가는약 4,000 엔이나 내렸고 실업률은 다달이 사상 최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구조개혁은 커녕 경제기반 자체가 붕괴하리라는 우려까지 대두하고 있다.
내년 1월 8일로 환갑을 맞는 고이즈미는요즘 들어 부쩍 나이가 든 모습이다. 정권과 일본 전체의 운명이 걸린 새해를 앞두고 그만큼 고민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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