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여운형'한국 현대사의 지도자 가운데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ㆍ1886~1947)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없다.
해방 후 정국에서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그는 우익으로부터는 공산주의자, 좌익으로부터는 우경 기회주의자로 공격받다가 결국 테러로 숨을 거둔다.
‘나의 아버지 여운형’은 몽양의 딸 여연구(1927~1996)가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놓고 아버지의 지나간 인생 행로를 파헤쳐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라며 쓴 평전이자 여운형 일가의 수기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여연구는 1991년 서울을 방문했으며, 범민련북측본부 등 주로 대남 분야에서 활동해 남한에도 잘 알려졌다.
이 책은1995~1996년 일본에서 발간되는 잡지 ‘통일평론’에 일본어로 연재된 글을 묶은 것이다. 신준영(38) ‘남과 북이 함께 하는 월간 민족21’ 편집장은 세 차례 방북, 몽양의 일곱 자녀 중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여연구의 동생 원구(74ㆍ현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를 만나 인터뷰하고 이 글의 존재를 확인, 번역ㆍ편집 과정을 거쳐 단행본으로 냈다.
신씨는 “여연구가 정확히 언제 이 글을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쓴 내용이 유럽ㆍ일본의 동포들의 손을 거쳐 ‘통일평론’에 연재됐으며, 내용의 사실성도 여원구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몽양이 일본 천황과 직접 만나 조선의 독립을 담판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그간 소문으로 떠돌기는 했지만 학계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 여연구가 자신의 사촌인 여경구의 유언을 듣고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몽양은 1940년 3월 조카 경구를 통역자로 데리고 도쿄에서 일본 천황을 만났다.
천황은 몽양에게 “중국에 가서 일본 군대가 지나갈 길을 빌려달라고 청탁할 것이니 도와달라”며 “당신이 조선인으로 태어난 게 안타깝다”고 했다.
몽양은 그 답으로 “조선 인민은 친일주구 때문에 일시적 치욕을 당하고 있다”며 “중국과 조선에서 군대를 다 철수시키라”고 일갈한 것으로 여연구는 이 책에서 적고 있다.
여연구의 기록은 이외에도 1936년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후 일장기 말소사건이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있던 몽양에 의해서 주도됐다는 것, 몽양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가족을 김일성의 손에 맡겼다는 것 등을 새롭게 전해준다.
여연구가 글을 시작하면서 “내 인생 황혼기에 아버지의 인생 행로를 더듬으니 감회가 깊다”고 했듯 이 책은 몽양의 삶과 사상뿐 아니라 부녀간의 애틋한 정을 드러내는 내용으로 읽히기도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는 몽양을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규정하고, “미ㆍ소라는 강대국의 영향력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의 전장이 되어버린 한국 현대사는 그의 현실주의적 접근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념의 전장이 되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몽양 여운형만큼 찬반의 평가가 엇갈렸던 지도자는 드물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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