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그림을 보는 법은 여러 가지다. 전문가들은 작품의 양식이나 미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한다.
일반 관객은 좀 더 자유롭게 본다. 뭘 그린 걸까, 왜 그렇게 그렸을까, 무엇을 말하는 걸까 궁금해하면서 살핀다.
한문학자 강명관(43ㆍ부산대 교수)은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그림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읽어낸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그렇게 해서 쓰여진, 그림으로 읽는 조선시대 풍속사다.
혜원의 그림이 주로 노는 것 아니면 성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이 책도 자연히 조선 사람들의 유흥 풍속을 다룬 것이 됐다.
이 책에 자료로 쓰인 그림은 1974년 한 출판사가 영인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이다. 거기 실린 30장의 그림을 꼼꼼히 관찰하고, 관련 기록을 챙기고, 역사적 상상력을 보태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낸다.
예를 들어보자. 으스름 달밤의 밀회를 그린 ‘삼각관계’라는 그림에서, 지은이는 거기 등장하는 세 인물의 옷차림과 포즈, 시선 등을 면밀히 살핀 다음,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 내력을 짚는다.
부둥켜 안은 두 남녀는 어떤 사이일까. 옷차림으로 보아 포교(조선시대 하급 군관)와 양반집 여인 같은데, 키스신에 가까운 야한 정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남녀 칠세 부동석’을 철석 같이 지키고 신분 질서가 엄격하던 시절인데 말이다.
한 쪽에 떨어져 선 채 그들을 지켜보는 여자는 또 누구인가. 기생처럼 보이는데, 왜 그 자리에 있는 걸까.
지은이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시대 삶의 방식이며, 엄격한 성리학적 질서로도 억누를 수 없었던 옛 사람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만나게 된다.
개의 짝짓기를 보며 배시시 웃는 과부, 중이 쓰는 송낙을 쥔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 빨래터의 부인네들,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 보는 양반, 기생을 무릎에 앉힌 채 수상한 짓을 하는 양반, 후줄근한 선술집의 어중이 떠중이, 기방에서 난투극을 벌여 웃옷이 훌렁 벗겨진 양반, 굿 하는 무당이나 노상 걸립을 하는 사당패 등 혜원 그림 속 인물들이 정지 화면을 뛰쳐나와 독자의 머리 속에서 영화 필름처럼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림 속 정경을 연출한 사회적 배경이며 관습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러한 생생함과 풍성함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혜원은 기방, 도박, 놀이, 성 등 당시로선 금기시되던 소재들을 그렸다.
조선사람들의 원초적 삶의 모습을 다룬 것이다. 그 바람에 화원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하여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설도 있다.
지은이는 이 삐딱해 보이는 화가가 남긴 풍속화에서 완강한 도덕의 틈새를 찢고나온 조선 사람들의 원초적 욕망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노는 데 정신이 팔리고, 섹스에 몸 달았던 선조들의 좀 더 인간적이고 살아 숨쉬는 모습을전한다.
혜원 이후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이 흥미로운 시간 여행을 함에 있어 지은이는 한문학자답게 그 시대의 시가와 한문단편을 두루 동원함으로써, 그림만 봐선 완전 해독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실록이나 문집, 기존 연구서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지은이는 회화사 전공자가 아닌 문외한으로서 ‘주제 넘은 짓’인줄 알면서도 이 책을 쓴 까닭을 “나는 ‘그림’이 아닌 ‘풍속’을 읽고 싶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풍속화를 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됐으니, 이처럼 자유분방한 영역 넘나들기가 꼭주제 넘은 짓은 아니라 할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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